"가만 있지 못 하는 성격이에요. 예전엔 폐쇄적인 편이었는데 오지랖이 넓어졌죠. MBC '나는 가수다'도 그래서 하게 된 겁니다."(윤종신)
'예능 늦둥이'로 TV에서 맹활약 중인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43)이 또 일을 벌였다. 재능 있는 두 후배 뮤지션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신치림'을 결성하고, 첫 앨범 'EPISODE 01 여행'을 냈다. 그룹명 신치림은 세 사람의 이름 끝자를 모은 것이다. 인디 음악계의 떠오르는 별 조정치(34), 월드뮤직에 빠져 8년째 앨범을 내지 않은 하림(36)이 "윤종신의 꼬임에 넘어가" 한 글자씩 헌납했다.
"게으르기도 했고 (가요계) 시스템에 대한 '삐침'이기도 했어요. 왜 음반을 내야만 활동을 한다고 하는 걸까 생각했죠. 앨범은 안 냈지만 꾸준히 뭔가를 해왔어요. 다른 뮤지션의 공연이나 앨범에 참여하기도 하고, 미술 작가들 지원도 하고, 기획 공연도 했죠. 그러다 종신이 형 제안으로 신치림에 참여했는데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더군요."(하림)
윤종신의 오지랖을 잡아 끈 건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 2010년 데뷔 앨범을 낸 조정치였다. 김C의 소개로 만나 '치과에서'를 함께 작업하며 "없어 보임의 미학과 찌질한 감성"에 대해 교감을 나눴다. "생각이 깊지 않아서 (윤종신의 제안에) 하시려나 보다 했다"는 조정치의 말에 윤종신은 "정치가 음악은 잘하는데 고집이 없어서 내가 등치고 있다"고 받아쳤다.
세 남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여행'이다. 2004년 2집을 내고 "한겨울에 악기를 짊어지고 돈도 없이 유스호스텔을 전전할 정도로 미친 듯이 여행을 다녔던" 하림이 앨범의 방향타를 잡았다. 앨범은 여행을 꿈꾸는 '퇴근길'로 시작해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들뜬 '배낭여행자의 노래'로 끝난다. 인위적인 전자음을 뺀 단출한 어쿠스틱 편성이 여행자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9곡을 3명이 3곡씩 작곡했다.
"믹싱 끝내고 나니 요즘 가요계에 없는 음악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대중적이면서도 뻔하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다들 꽉 차 있는 음악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여유 있고 비어 있는 음악을 하고자 했죠."(윤종신)
신치림은 "꾸준함과 포기하지 않음"을 무기로 삼은 윤종신이 어떻게 20년간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가 살아나야 아이돌에 치우친 가요계가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신치림의 앨범은 이 같은 바람의 산물이다.
세 사람은 제주도로 내려가 9곡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하면 된다는 정주영 식 마인드"(윤종신)로 닷새 만에 촬영을 마쳤다. '퇴근길'과 '모르는 번호' 두 곡만 먼저 공개했는데 나머지는 다음달 상영회 겸 콘서트를 열어 공개할 예정이다.
"신치림을 만든 건 형으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옆에서 툭툭 건드려줘야죠. 전 그저 얹혀 가는 겁니다." 그렇게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얹혀서,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끌고, 가는 윤종신의 음악 여정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계속될 듯하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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