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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새누리당의 색깔 바꾸기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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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새누리당의 색깔 바꾸기 도박

입력
2012.02.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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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일까? 빨강이다. 그는 13일 붉은색 셔츠 위에 재킷을 입었다. 새누리당이 새 출발을 위해 전국위원회를 개최한 날이다. 새누리당의 상징색도 이날 빨강으로 확정됐다. 우리나라 보수 정당이 31년 동안 사용한 파란색을 버리고 빨간색을 택한 것이다.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 보수 정당은 계속 파란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해 왔다. 유럽에서도 보수 정당은 파란색, 진보 정당은 빨간색을 주로 써 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전통 보수 색채를 과감히 벗어 던졌다. 당명 변경에 이어 당의 색깔까지 바꾼 것이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말을 만들어낸 카피라이터 출신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 제안한 상징색을 박 위원장이 수용했다. 색깔 바꾸기는 변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이라는 기존 상품은 거의 팔리지 않으니 '새누리당'이란 새 브랜드와 색깔로 상품을 포장해 소비자에게 내놓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당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새누리당의 상징색 변경에 대해 한 전문가는 "진짜 급하긴 급한 모양" 이라고 촌평했다. 보수층에서도 불만이 쏟아졌다. 한 유권자는 "새누리당이 본래 이름과 색깔을 버렸으니 이번 총선에서 크게 당해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당만 보고 표를 찍는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 같은 부정적 평가들을 들었는지 새누리당은 새 당명의 서체 색깔을 당초 검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꿨다. 파란색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살짝 살려놓게 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연말 비상대책위를 꾸린 뒤 지금까지 '바꾸자 바꿔!' 행보를 계속해 왔다. 맨 처음 당의 얼굴을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 위원장으로 바꾸었다. 또 총선 공천 과정에서 현역 국회의원들을 절반 이상 물갈이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색깔 바꾸기는 당의 정책과 노선에도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전면 무상급식 도입에 제동을 걸었던 새누리당은 요즘엔 복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평생 맞춤형 복지' 와 사회적 약자 존중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집권당이 이처럼 포퓰리즘 정책을 많이 쏟아내는 것은 처음"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새누리당은 고교교육 의무화를 정강∙ 정책에 이미 명시했고, 사병 월급을 월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및 납품 단가 후려치기 대책 등을 내놓으며 재벌 개혁을 외치고 있다.

요즘 주장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이 보수에서 중도 쪽으로 좌클릭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새누리당이 민주당이 설정한 프레임에 끌려간 것이란 지적이 있다. 하지만 '진보 정당과의 정책 차별성을 줄이려는 새누리당의 물타기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도 있다. 여야 정당의 색깔과 노선 차이가 줄었으니 국론 분열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을 지향할 수 있어 바람직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여야가 중요한 정책 방향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견제하면서 건전하게 토론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위험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색깔 변화에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단지 총선과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정강ㆍ정책과 공약 등을 급조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당적이 없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이 '경제 민주화' 조항을 정강에 포함시키고 재벌 개혁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비대위 활동이 종료돼 김 위원 등이 당을 떠난 뒤 과연 누가 그런 정책들을 책임 있게 밀어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손님이 당의 기조를 바꾼 뒤 떠나버리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당의 노선을 진정으로 바꾸지 않고 옷만 갈아 입는다면 카멜레온 정당이 될 수도 있다. 색깔 바꾸기 실험의 성패는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유권자 표심 잡기와 소비자 마음 끌기는 분명히 다른 일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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