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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냉골' 차상위계층/ (하) 자립의 꿈, 좌절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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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냉골' 차상위계층/ (하) 자립의 꿈, 좌절의 연속

입력
2012.02.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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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활근로 수입 70만원뿐인데… "빚 많다, 고시원 산다"며 지원 제외

"게을러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도 못사는 경우도 많아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차상위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최경만(61ㆍ가명ㆍ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차상위 계층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설명하는 와중에, 잠시 이런 말을 곁들였다. 자립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실직과 잇단 취업실패, 자활로 이어지지 않는 제도 등 답답한 현실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최씨는 과거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국제봉사단체 간부와 국회의원 비서 등을 거쳤으나 2008년 실직했다. 이후 운전기사로 지원하는 곳마다 모두 떨어졌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기 위해 정부 차상위 자활사업 참여를 신청했다. 지난 해 11월부터 50여개 아파트를 돌며 폐가전제품을 수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 8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70만원 정도(일당 3만300원)를 받는다. 하루 한 시간 병원에 다녀 와도 그만큼 월급에서 제한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정부 자활사업에 3개월여 참여하며, 최씨의 얼굴에는 자립의 희망보다 좌절의 빛이 더 깊어갔다. 그가 참여하는 사회적 일자리 자활근로는 시급이 3,700원 정도로 최저임금(4,580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기초수급자들(근로 능력이 있고 무직인 경우)은 자활참여 조건으로 자활임금 외에 의료비ㆍ교육비ㆍ주거비ㆍ생계비 지원 혜택을 받기 때문에 사정이 낫다.

그러나 자활근로에 참여하는 차상위 계층은 오로지 임금 60만~70만원밖에는 없다. 역시 취업이 안돼 자활근로에 참여하고 있는 김영호(44)씨는 "하루 세끼 먹으면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두 끼만 먹는다"고 했다. 전체 자활근로 참여자 중 차상위는 26.8%(1만 6,000여명)이며, 그 외 자활명목의 취업 컨설팅이나 지원 프로그램까지 합치면 2만4,000명(전체의 28%)이다.

간혹 자활사업단이 수익을 많이 낸다고 해도, 임금인상으로는 연결이 안되며 향후 창업ㆍ취업에 나선 참여자를 지원하기 위해 적립된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취업ㆍ창업에 성공한 비율은 전체 참여자의 21.8%뿐이었다.

최씨는 다른 차상위계층 지원 제도도 찾아보았지만 알아볼수록 좌절의 연속이었다. 최씨가 차상위 자활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서울시의 희망플러스통장사업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차상위 복지수급자(자활도 해당)가 매월 10만~20만원씩 저축을 하면, 같은 액수를 매칭시켜 적립해 주는 것이다. 최씨는 그렇게 해서 노후에 작은 담배가게라도 하나 운영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보건복지부도 비슷한 희망키움통장이 있지만, 기초수급자에만 해당 돼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희망플러스통장 자격심사 도중에 부채가 5,000만원 이상이면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절망했다. 그는 "신용불량자나 부채를 짊어진 사람들이 오히려 지원이 절실한데, 부채가 있다고 안 된다니 너무 좌절했다"고 말했다. 부채가 많을 경우, 적립금을 부채상환에 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최씨의 부채는 아파트 신규분양계약을 한 후 시공사에서 무이자 중도금 명목으로 계약자들 이름으로 제2금융권에서 빌린 것인데, 이후 시행사ㆍ은행 간 소송전으로 아파트 건설이 차질을 빚으면서 고스란히 최씨의 빚이 됐다. 최씨는 특별히 잘못해서 빚을 진 것도 아닌데, 심사에서 탈락하니 괴로웠다고 한다.

좌절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인과는 이혼했고, 두 딸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데 딸들에게 기대고 싶지 않다는 그는 현재 고시원에서 생활한다. 구청에서 저소득층에게 임대료를 지원하는 정책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그러나 "주택에서 살아야지, 고시원에서 살면 지원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돌아섰다. 최씨는 "월세도 구하기 어려워서 고시원에 사는 것인데, 고시원이라고 지원이 안 된다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몸이 아프게 되면 어쩌나도 걱정이다. 지난해부터 어깨가 탈골 되고 인대가 늘어나서 1주일에 한차례씩 병원을 찾고 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의사는 치료상황을 알기 위해 자꾸 초음파 진단을 하자고 하는데 건강보험도 안 되는 초음파는 한번 검사할 때마다 5만원이어서 거절하고 약만 받아온다. 그는 약값이라도 덜기 위해 차상위 건강보험 의료비 지원(본인부담금 경감) 대상이 될까 해서 진단서도 끊어놓았지만, 주민센터에서 "신청해도 안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라는 진단이 필요한데 최씨의 질병은 치료 기간을 확정할 수가 없고, 딸과 사위의 소득까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자활 참여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보장할 경우 시장 진출 의지를 오히려 막을 수 있다"며 "그〉?임금이 적은 것은 사실이라 매년 조금씩 올리고 올해도 3% 인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빈곤사회연대 최예륜 사무국장은 "혜택이 있는 기초수급자는 그렇다고 쳐도, 차상위 자활참여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 전문가들의 '차상위 계층' 해법은

차상위 지원 확대 필요성은 정부도, 학계도, 현장 복지사들도 절실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확대 방법에 대해서는 통합지원 체제를 구축하느냐, 지금 있는 제한적인 개별 급여를 확대하느냐 등 약간씩 의견이 다르다.

서울 성북구청 복지조사팀 심유미 팀장은 "현장에서 조사를 하다 보면 차상위 기준이 너무 중구난방이어서, 하나하나 따로 신청하고 조사해야 한다"며 "기초생활수급자처럼 차상위도 별도로 묶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재산, 소득 등 조사할 것은 다 하고 달랑 월 3만원(장애수당의 경우) 지원할 때는 미안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4대 차상위 제도 중에서 장애수당, 차상위 자활 참여는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재산도 소득으로 환산), 한부모 가정 지원은 최저생계비의 130% 미만(재산도 소득 환산)을 자격기준으로 삼고 있고, 건강보험 의료비 지원(본인부담금 경감)은 별도의 부양의무기준까지 따진다. 모두 따로따로 신청해야 하는 것들이다. 통합지원 체계를 구축할 경우, 장애인ㆍ한부모 등이 아니면 전혀 지원제도가 없는 일반 차상위 계층(본보 13일자 3면 참조)에게도 지원 확대가 쉬워진다.

그러나 통합급여는 기초수급자로 충분하며, 차상위 계층은 개별 급여를 확대하는 방안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기초생활수급 제도는 유지하고, 교육ㆍ의료급여 등 개별 급여를 차상위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차상위 기준을 일괄적으로 정해서 통합급여를 만들자는 것은 행정편의적인 입장이고, 대상에 맞는 필요한 지원책을 찾으려면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차상위로 묶을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특성 별로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개별급여들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구인회 교수는 "노인ㆍ장애인ㆍ한부모 등을 지원하는 현재 개별 차상위 제도들이 아주 미흡하며, 기초노령연금 등의 확대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차상위 지원은 현금 지원보다 공공주택 혜택 등과 같은 현물서비스를 개발하는 방향이 옳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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