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법원으로부터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은 서기호(42)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대법원 결정에 대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 판사는 13일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법적 구제 절차를 모색하기 위해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판사는 "이미 여럿과 얘기가 끝났다. 변호인단 구성을 마치는 대로 (소송 등) 본격적인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 판사는 자신에 대한 재임용 탈락 결정을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관행에 따라 내려진 불합리한 행태"라고 주장했다. "비공개에다 이의 절차가 없는 연임 심사, 상향식 평가가 배제된 법원장이 내린 근무평가성적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일본, 독일과 비교하면서 "우리나라만 유독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결국 판사를 일반 기업의 정규직 직원보다도 못한 '10년 계약직' 신세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합리적인 인사ㆍ행정 시스템이 아니라 인맥과 학맥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 없이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재판의 독립을 위해서라도 법과 원칙에 따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판사는 자신의 재임용 탈락 이후 각급 법원의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 판사회의 소집 등 움직임이 일고 있는 데 대해 "서 판사 개인이 아닌 (나로 인해 제기된) 연임 심사제도 자체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며 판사들의 반발 움직임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법원장 눈치 안 보고 할 말 다했고, 근무평정 잘 받을 수 있는 재판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연구만 해 왔다"며 "지금 결과를 보고 사람들이 나를 '바보판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 판사와 가진 일문일답이다.
_ 이번 재임용 탈락 결정에 '튀는 판사'를 솎아내겠다는 대법원장의 의중이 작용했다고 보는가.
"인사위원회의 결정을 대법원장이 무조건 따르는 건 아니다. 또 하위 2% 성적이 이유라는데 작년까지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아무 말도 없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대법원장의 의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연임 심사의 불투명, 객관적이지 못한 근무평정 등 법과 원칙에 어긋난 결정이라는 본질을 흐리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다."
_ 법과 원칙을 강조했는데, 영화 '부러진 화살'의 김명호 전 교수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나.
"'부러진 화살'도 결국 법과 원칙을 안 지키는 법원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ㆍ투명성이 아니라 비공개 관행, 알아서 사직하는 관행,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꺼리는 관행. 법원장과 대법원장의 심기를 거슬리면 안 된다는 관행에 따른 결정이라고 본다."
_ 재임용 문제 말고 사법부의 비합리적인 모습을 또 지적할 게 있나.
"굉장히 많다. 물론 가장 큰 것이 근무평정이다. 판사들은 법원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 또 한가지는 평판이다. '찍히면' 평생 간다. 변호사 나가서도 힘들다. 그래서 연임 부적격 통보를 받으면 아무 말 못하고 사표를 내는 것이다."
_ '하' 평정을 5번 정도 받았다면 실제로 직무 성적이 나쁜 것 아닌가.
"상대평가다. '하'가 5번이라고 해서 직무가 불가능할 정도의 '하'인지, 평균치보다 조금 낮아서 '하'인지 검증할 수 없다. 모든 '하'를 똑같이 볼 수는 없다. 그 평가에 다른 근거는 없었는지,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_ SNS 사용과 관련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판사를 못 믿는다는 것이다. 평소에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니고, 사석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재판에 들어가 심리를 할 때는 법률가로서의 양심에 따라 객관적으로 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또 그렇게 하고 있고, 충분히 할 수 있다."
_ 결국은 법복을 벗게 됐다. 후회는 없나.
"법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면 법원장에게 좋지 않게 평가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의견 개진을 계속 해왔다. 또 재판의 결과가 중요한데, 나는 재판의 과정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근무평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이제 알았다. 후회는 없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도 당시 행동은 양심의 목소리였다. 탈락했지만, 떳떳하다. 다른 인생을 개척할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_ (기존의 부적격 통보를 받은 판사들처럼) 사표를 내고 자리를 박차면서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법과 원칙에 따른 결정이 아니니까, 그런 논리가 성립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후배 판사들, 연임을 앞둔 판사들에게 불합리한 제도가 나와 같이 그대로 적용되는 걸 원치 않는다. 법원에 대한 애정으로 봐 달라."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