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개학을 앞두고 '학생인권조례'에 이은 '교권조례'의 등장 소식에 초․중등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학생의 수업방해나 학부모의 교육활동 방해로부터 교사들의 교육권보호를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서울시의회의 교권조례가 이달 27일 시의회 정례회의를 통과하면 3월 새 학기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어느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학교조직은 다른 조직들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짙은 곳이다. 그래서 학교현장에서는 전통적 가치관을 지닌 교사집단과 새로운 문화를 표방 하려는 신세대학생들 간의 문화적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두발과 복장 그리고 체벌 등의 문제가 대표적 사안들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일부 내용의 비교육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학생은 학생다운 용모를 지녀야 한다"는 기성교사들의 통념과 철옹성 같은 방어벽을 뚫어준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학생인권조례의 든든한 버팀목을 마련한 학생들의 쏟아지는 요구로부터 교사들의 교육권을 지켜줄 보호막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교권조례'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조례를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교육위원들은 교권조례가 실시되면 학생인권조례와 더불어 수레바퀴의 양 축을 이뤄 학생은 교권을 존중하고, 교원은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같은 기대효과와는 달리 조례의 역기능적 요소들이 곳곳에서 예견되고 있다. 우선은 학생의 권리 신장과 교사들의 권리 신장에 따른 조례의 후폭풍을 학교장과 교감 등 관리직이 고스란히 떠맡게 될 것이란 점이다. 학생을 대할 때는 학생인권을 생각해야 하고, 교사를 대할 때는 교권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학교운영의 난맥상이 우려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의 난맥상은 무엇보다 상위법과의 충돌이다. 조례는 '법률-대통령령-부령-조례'의 법체계에서 최하위에 속한다. 법체계의 통념상 하위법의 준거는 상위법의 가치를 존중해 이뤄진다. 국가에 헌법이 있듯이 교육계에는 초ㆍ중등교육법이나 교육공무원법이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 서울시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15개 조항의 교권조례는 상위법과의 충돌뿐만 아니라 학생인권조례의 내용과도 상충되는 내용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두발과 복장을 학생들의 자율에 맡긴다는 학생인권조례 규정과 학생은 교원의 교육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놓고 학생의 자율과 교원의 교육권 충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조례내용의 모호성도 문제다. 학생의 권리를 유형별로 제시한 학생인권조례와는 달리 교권보호조례에는 추상적 표현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교원이 '부당한 지시를 받지 아니할 권리'와 관련해 '부당한 지시'의 해석이나 "수업방해학생에 대한 교육적 지도 기능"과 같은 조항에서 과연 무엇이 '교육적 지도'인가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이처럼 당사자 간 유리한 해석과 주장을 내놓게 되면서 학교현장이 각자의 권리주장으로 시끄러워질 수 있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장, 그리고 교사와 교사간의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충분히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교권조례의 시행은 자칫 코미디프로의 애정남(?)을 불러들여야 할 판이다.
교원의 지위와 교권보호의 정신은 이미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등에 명시가 돼 있는 내용들이다. 문제는 법이 존재해도 그 법을 따르려 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풍토다. 헌법위에 관습법이 있고, 관습법 위에 떼법(?)이 존재한다고 하질 않는가. 학교사회가 각종 조례로 각자의 권리주장과 집단간 떼법이 지배하는 상황으로 접어들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교육의 문제는 교육적 가치로 풀어나가야 한다. 교육의 문제를 세상 법리로 해결해 나가다 보면 교육은 황폐화되고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조례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향후 교장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운영 조례를 만들고, 학부모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또 다른 조례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교육현장만큼은 구성원간의 상호신뢰와 존중의 바탕 위에 문제를 해결해 가는 민주적 절차가 꽃을 피우는 곳이 돼야 한다.
오성삼 건국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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