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감독이 되고 싶어 한 감독을 찾아가 간청을 한다. 그 감독이 거절하자 손가락 하나를 잘라 알코올이 담긴 병에 넣어 다시 감독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조감독이 된다. 요절한 천재 감독 이만희(1931~1975)의 조감독으로 일한 서유신씨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이 감독이 숨지자 서씨는 감독의 꿈을 접고 충무로를 떠났다. 영화에 마음을 뺏겨 목숨까지 걸었던 서씨의 처절한 일화가 지난 주말 문득 떠올랐다. 9일 개봉한 이란 감독 아미르 나데리의 다국적 영화 '컷'을 보고 나서다.
'컷'은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영화광 출신 젊은 영화감독 슈지(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전쟁 같은 삶을 소개한다. 생활에 쪼들려도 고전영화 정기상영회를 고집스레 열어가며 영화 연출을 준비하던 슈지는 어느 날 자기 삶을 지탱하던 기둥 하나를 잃는다. 뒷골목에서 일하며 재정적으로 자신을 돕던 형이 두목의 돈을 빼돌렸다가 살해된 것이다. 야쿠자 조직은 형이 남긴 빚의 청산을 요구하고 슈지는 야쿠자들을 상대로 인간 샌드백이 돼 돈을 벌려고 한다.
얼굴이 무너져 내리고, 몸이 부서져가도 슈지는 그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떠올리며 버틴다. 이러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휘말렸을 때 그가 되뇌는 말은 가슴을 누른다. "살고 싶어. 영화를 만들고 싶어. 살아 남을 거야."
빚을 갚아야 하는 날 100대를 맞아야만 하는 슈지는 100편의 영화를 떠올리며 부조리한 현실에 맞선다. 야쿠자들의 주먹이 슈지의 몸을 가격할 때마다 세계적인 명작 한 편씩의 제목이 스크린에 새겨지는 장면을 접한다면 누구나 전율할 것이다(100편 중에 한국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어린 시절 영화에 미쳐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기어이 감독이 된 나데리는 슈지의 고난을 빌어 영화를 향한 끝없는 짝사랑을 그렇게 드러낸다.
슈지는 "영화는 매춘이 아니다. 영화는 예술이다"라고 피를 토하듯 외친다. "진정한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으로 만든 진실한 영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산업이냐 예술이냐는 물음은 영화 탄생 1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어쩌면 영원히, 딱 부러진 답을 얻기 어려운 문제다. 슈지의 영화에 대한 관념이 근본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가벼움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요즘 귀 기울여 볼 만하지 않을까.
한국 영화계에 더욱 서늘하게 다가올 슈지의 대사는 특히나 곱씹어볼 만하다. "지금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거의 모두 오락영화입니다… 멀티플렉스와 거대자본으로부터 영화를 찾아옵시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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