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2년 2월 7일자 '학교폭력 과연 없어질까' 기사를 읽고
6일 발표된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은 피해 학생 보호 및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가해 학생에게는 즉각적으로 출석 정지가 이루어지며, 부모의 동의 없이도 전학조치를 할 수 있다. 또한 피해 학생은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각종 치료와 상담 비용은 가해 학생의 학부모가 부담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복수담임제, 입시에 인성교육 반영 등의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가 말하는 대책으로는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없다. 발생 이후의 대책은 학교폭력 '근절'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벌백계로 학생에게 공포감을 주어 당장은 학교폭력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근본적인 불씨는 그런 방법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일진'이나 '문제아'등의 이름으로 학교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학생을 진정한 학교의 울타리 안으로 보듬을 때 학교폭력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인성을 입시에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도 어불성설이다. 입시를 위한 공부, 입시를 위한 봉사가 이미 하나의 큰 문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성까지 점수화하여 평가하겠다는 의미인데, 대입 실적 하나 더 쌓으라는 말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경쟁제도의 부작용이다. 사회와 다르지 않은 경쟁체제에서 인격으로서의 학생 각각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대책은 경쟁 완화이다. 그런데 그 경쟁에 인성 항목을 포함시키는 방법으로는 실적만 올릴 수 있을 뿐 학생이 받는 실질적인 인성교육은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단순히 사건을 조사해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학생을 나누고,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격리시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또 학생이나 교사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문제는 학교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력을 당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게 누구든 처벌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책임을 오직 가해 학생과 학교에만 돌리고 그들만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폭력을 행한 학생도 피해자일 뿐이다. '가해자'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시험을 잘 보아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교실에 모인 아이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가르쳐 주지 못한 제도의 피해자이다. 따라서 학생 개인의 문제만으로 학교 폭력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막다른 골목으로 학생들을 몰아간 사회가 '가해' 학생에게도 사죄해야 한다.
청소년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은 충분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정작 청소년에게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미성년자라는 미명 아래 제대로 싹을 틔우기조차 힘들다. 학교 시험점수가 등수가 되고, 등수가 곧 그 사람의 가치로 환산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열등감과 우월감을 배운다.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은 스스로를 남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성적이 더 좋은 친구에게는 열등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열등감을 해소할 문화적 출구가 없기에 누군가를 괴롭히며 우월감을 충족한다.
학교폭력과 함께 이른바 '메이커'에 집착하는 현상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의 상처입은 열등감을 회복하기 위해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그렇게 하듯 옷으로, 가방으로, 또 다른 물질적인 가치로 서로를 평가하고 줄세운다. 또한 비싼 물건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라고 온몸으로 가르친 것은 이 사회이다. 앞다투어 메이커 옷을 사는 청소년의 왜곡된 문화를 비판하기 전에 청소년이 그런 문화를 형성하기까지 그들을 방관한 것은 아닌지, 학생들이 원래 누려야 했을 문화를 빼앗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청소년 사회는 그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현재 청소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청소년만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에 비추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힘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생각은 권력지향주의에, 청소년의 메이커 선호 현상은 물질만능주의에, 과도한 입시경쟁과 교육열은 학벌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진정한 근절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그런 인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법에 의한 규제보다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바뀌는 쪽이 청소년을 바로 세우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김주영(안산동산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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