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군대의 임무 중 하나는 도성에 출현한 호랑이를 잡는 일이었다. 순조 26년(1826) 북악산 근처에 나타난 호랑이를 군인이 잡는가 하면, 헌종 6년(1844)엔 경모궁 후원에 출현한 호랑이를 잡으러 장교가 파견되기도 했다. 훈련도감 일지 '훈국등록(訓國謄錄)'에 나오는 내용이다.
'훈국'으로도 불렸던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6년(1593) 설립된 조선 후기 최대 군영으로, 1882년 군제 개편으로 해체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국왕 호위와 도성 경비를 담당하며 정치, 경제,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으로는 군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둔전(屯田)의 확대, 군수 광공업의 성장, 상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서울의 상업 인구가 늘어 주택, 위생, 범죄 등 사회 문제를 낳기도 했다. '훈국등록'은 훈련도감의 업무 처리와 훈련도감에 관한 조정의 논의를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현재 91책이 남아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정정길)이 조선 후기 사회사 연구 사료의 보고(寶庫)인 '훈국등록' 영인본을 발간했다. 1618년부터 1881년까지 기록을 담은 1~19책을 7권으로 우선 발간했고, 앞으로 5년간 91책 전체를 총 40권에 묶어 펴낼 계획이다.
영인본 해제를 쓴 정해은 한중연 선임연구원은 "훈국등록에는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면서 "효종 편에는 모병제로 크게 늘어난 병사들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해 시전 장사를 허락하자 세금 내고 장사하는 시전 상인들이 이를 폐해달라고 왕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소개했다. 특히 군인들의 비리에 관한 내용이 많다. 효종 때 훈련도감의 기패관(旗牌官) 김인건 등이 민간의 나무를 베고 숙식하면서 공궤(供饋)를 요구해 곤장을 치라는 전교가 내려왔고, 영조 때에는 장교와 군졸들이 대낮에 시장에서 술을 강제로 요구하는 등 폐해가 심해 현장에서 발각되는 즉시 처벌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기도 했다. 숙종 때에는 오군영의 군졸들이 실(絲)을 강매하기 위해 시방(市防)에 돌입해 행패를 부리자 이를 엄금한 내용이 나온다.
특이한 사건, 사고에 관한 기록도 있다. 숙종 대 기록에는 현종 때 수의(首醫) 이동형이 죽은 뒤 가족들이 가세가 기울어 군무에서 빌린 300냥을 갚지 못해 관노비가 될 위기에 처하자 특별히 탕감해준 일, 순조 대 기록에는 흥화문에 입직한 초군이 악몽을 꾸어 벌거벗고 달리면서 고함을 친 일로 심문한 일 등이 나와 있다. 해제를 쓴 김종수 군산대 교수는 "훈국등록은 조선 후기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훈련도감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라면서 "당시 현실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고 의의를 소개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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