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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35> 윤동주 시인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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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35> 윤동주 시인 타계

입력
2012.02.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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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사랑과...'

'서시'와 '별 헤는 밤'으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가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16일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28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윤동주는 독립투쟁을 하다 산화한 투사도 아니었고 당대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시인도 아니었지만 자신의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 했던 시 정신은 어느 투사 못지않게 치열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서시'의 구절처럼 그는 일제의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모진 풍파 속에서도 독립된 나라를 꿈꿨다.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시인은 이 곳에서 28년 생애의 절반을 보내며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38년 의과 진학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한 윤동주는 최현배, 손진태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민족 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음과 함께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하게 된다.

연희전문에서의 4년은 일제 치하의 참담한 민족 현실에 눈뜨는 과정이었고 그에 맞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들어가는 몸부림의 시간이기도 했다.

재학시절 '자화상'과 '투르게네프의 언덕'등을 통해 식민지의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고뇌와 갈등을 표현하던 시인은 현실에 대한 회의로 고뇌하다 졸업반이던 41년에 이르러 내적인 방황과 자신을 짓눌렀던 역사의 무게를 시를 통해 승화시키기 시작했다.

'무서운 시간'을 통해'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라 외치며 살아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간판 없는 거리'에서는 어진 사람들의 손목을 잡고 보듬는 따뜻한 민족 사랑을 시로 녹여나갔다.

졸업을 앞둔 41년 윤동주는 그 때까지 써놓은 시들 중 18편을 뽑고 여기에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었으나 일제의 검열로 인해 출판에 이르지는 못했다.

42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 시인은 정지용시인이 다녔던 교토 도지샤대학 영문과에 진학하며 나름대로 안정된 유학생활을 보내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사상범으로 체포됐고 45년 2월 16일 조국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짧지만 굵은 생을 마감했다.

윤동주시인의 유해는 고향 용정에 안장됐으며 그를 상징하는 '서시'는 광복 후 다른 유고작들과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로 간행됐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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