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대한 첫 인상은 중학교 때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축구대회를 보면서 생겼던 것 같다. 이스라엘 축구팀은 매우 강해서 한국은 이스라엘과 붙을 때마다 번번이 고전했다. 당시 경기 해설자가 수천 년 동안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강인한 민족성 덕분에 축구도 잘 하는 것 같다는 식의 설명을 했을 때 "그런 나라였구나"하고 속으로 감탄도 했다. 그 후 이스라엘이 유럽으로 편입돼 더 이상 한국과 경기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축구의 강렬한 인상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은 신문사에 들어와 오랫동안 국제문제를 다루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이스라엘 때문에 중동이 조용할 날이 없었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반미 감정의 배경에도 이스라엘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지구촌이 좁아지면서 이스라엘 때문에 우리가 겪는 직간접적인 피해도 많아졌다. 이스라엘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치고 이만큼 욕을 먹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2003년 3월 예루살렘에서 본 이스라엘은 또 달랐다. 미국의 첫 토마호크 미사일이 이라크를 향해 불을 뿜을 때 유엔의 최후 통첩에 따라 급히 취재를 중단하고 바그다드를 빠져 나온 직후였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터지는 자살폭탄 테러로 창졸간에 수십 명씩 목숨을 잃는 현장의 절박함은 무덤덤하게 기사를 쓰던 편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그만 햄버거 가게에도 매장 안에서 터진 폭탄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위령패가 어김없이 벽 한 켠에 걸렸고, 구역마다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2인 1조의 테러 진압조가 도시를 압도했다. 거리 전광판에는 예루살렘 어느 쪽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속보가 수시로 떴다. 한나절 동안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면서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구나'라고 느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뒤통수를 무겁게 짓누르던 죽음의 공포를 내려놓고 안도의 숨을 내쉬던 기억이 새롭다. '이스라엘 국민이 365일 이런 생활을 하니 팔레스타인을 저렇게 모질게 대하는구나' 라고 공감도 했다.
그 때보다 테러가 뜸한 지금도 이스라엘의 안보는 끔찍한 수준이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경제평화연구소(IEP)가 매년 발표하는 평화지수에서 이스라엘은 지난해 조사 대상 153개 국 중 145위를 했다. 149위를 한 북한과 비슷하다. 핵무장한 북한과 머리를 맞대고 있는 우리가 50위를 한 정도니 이스라엘의 평화스러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지금 이스라엘이 올 봄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고 해서 세계의 이목이 다시 이스라엘로 쏠리고 있다. 구체적인 공격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사거리가 2,400km에 달하는 예리코2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F-15I 스트라이크 이글릿 폭격기 등을 동원해 이란 중부 나탄즈와 콤 인근 우라늄 농축시설을 폭격하고, 아랍권에서는 이란 핵프로그램에 가장 반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이 이스라엘 폭격기의 공중급유를 위해 영공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분도 실익도 없다. 이스라엘이 우세한 화력을 앞세워 이란 핵시설을 폭격한들 이란의 핵 야망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달, 길어야 2, 3년 핵 진척을 늦추는 정도다. 하지만 엄청난 후폭풍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메흐디군 등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이 중동 전역에 미치는 입김은 무시할 수 없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때리고 빠지면 그 뿐일지 모르나, 정치, 경제적 후유증은 지구촌 모든 국가에 심각한 부담을 지울 것이 분명하다.
국가관계도 일반 사회처럼 어느 한 척도로 재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대다. 작년 중동을 폭풍처럼 휩쓸었던 아랍의 봄이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냉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 국제 정세를 선과 악으로 양분하는 것은 난센스다. 자신의 적이 모든 사람의 적이라는 생각은 아집에 불과하다. 이스라엘도 이제는 관용과 용서를 베풀 때가 됐다.
황유석 국제부 차장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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