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학교에서건 동네에서건 언제나 한 둘은 있는 흔한 이름. 어린 시절, 세 딸들의 이름 끝에 돌림자 '경'이 붙던 이웃집 수경이네 개 이름도 미경이었다.
양미경, 김미경, 손미경, 이미경. 그나마 성이라도 다르면 괜찮은데, 아예 한 반에 성명 석 자가 꼭 같은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초등학교 때 한 반이던 박미경과는 키 큰 미경이와 키 작은 미경이로 나뉘어서 불렸고, 고등학교 때는 심지어 공부 잘하는 미경이와 공부 못하는 미경이로 나뉘어서 불렸다. 아, 아이들의 순진한 폭력성.
흔한 발음이야 그렇다 치고, 아름다울 미에 서울 경. 아름다운 서울이 뭐 어떻다는 말인가. 뜻도 모호하고 맥락도 없다. 농촌 출신 부모가 동경을 담아지은 이름이라면 그나마 의미 있을 텐데. 언젠가 엄마에게 내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느냐 항의했더니, 당시엔 그 이름이 제일 세련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보다 더 곤란할 것 같은, 친구 딸들의 이름을 덧붙여서.
개명의 적극성까지는 없어서 그럭저럭 살아왔고 40여 년을 쓰고 불리다 보니 이제쯤 귀에 익기도 하였는데. 그래도 부러운 것이 본이름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지녔던 옛사람들의 '호(號)' 문화였다. 스승이나 선배, 동료들이 호를 지어주었으며, '자호(自號)'라 하여 스스로 짓는 경우도 흔했다지. 자신이 은일하던 골짜기의 이름을 딴 박지원의 호 연암이나, 다산 정약용이 교만한 제자 황상에게 지어주었다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하라'는 뜻의 아암, 가까운 근대사 인물로 우리가 잘 아는 박목월도, 실명이 아니라 호다.
언젠가 지인들과 가졌던 술자리에서, 옆 좌석 여성의 이름이 또 미경이었다. 그녀가 호명될 때마다, 자꾸 고개가 돌아갔다. 그래서였을까, 볼멘소리로 호 이야기를 꺼낸 것이. 그때 한창 인디언 문학을 탐독하던 선배 한 분이 인디언식 이름은 어떠하냐고 물어왔다. 유명한 영화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늑대와 함께 춤을' 이나 영화 속 인디언 여성의 '주먹 쥐고 일어서' 같은 이름말이다. 선배는 새삼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품에서 꺼내듯 이름 하나를 툭 던져 내놓았다. '흐르면서 노래하는 자.'술자리에서 얻은 이름치고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그렇게 살아왔거나 혹은 그렇게 살아가라는 독려 같기도 하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허나, 설기도 하려니와 길기까지 해서 어디 달리 쓸 데가 없었다. 그저 마음 구석에 간직해두고 혼자 흐뭇해하였던 것인데. 현재 갤러리 류가헌(流歌軒)의 이름이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더 있었던 가 보다. 얼마 전 갤러리에 찾아 온 지인 하나가, 쑥스러워 하며 무연히 자신의 인디언식 이름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조용한 매의 고향.'그윽한 것이, 흰머리가 늘면서 취미로 목공을 시작한 그이와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얻은 이름인지 궁금하더니, 그 과정이 너무나 사소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중에 인디언식 이름 짓기 어플이 있는 것. 심지어는 아즈텍식, 일본식 이름 짓기도 있었다. 어플에 생년월일을 넣으면 이름이 나오는데, 어찌 운 좋게 그럴싸한 이름을 얻는 경우도 있으나 단어가 터무니없이 조합돼 아리송한 이름들도 있었다. 이 어플을 통한 이름 짓기가 스마트폰 유저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것인데…. 장난스런 '인디언식 이름 짓기' 어플에, 어떤 갈급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원화된 사회 체제에서는 한 사람 한 이름과 실명제가 기능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기능 중심의 사고가 멋스러운 문화 하나를 조용히 사라지게 했다. 문학이나 예술 등 일부 분야에서 호의 전통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극히 부분일 뿐이다. 계급사회 양반문화의 잔재라는 등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높이 사면 어떨까. 덕담처럼 누군가에게 호를 선물하고, 사는 거처나 지향하는바 가치관을 담아 스스로 호를 지어 갖는 멋스러움을 되살려보는 것이다.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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