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자(73ㆍ가명) 할머니는 지난해 서울 노원구 중계동 임대아파트 12층에서 밤이면 혼자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 보곤 했다. 세상을 버릴 마음을 몇 번이나 먹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사망한 남편을 16년 간 병수발하며 혼자 힘으로 1남 1녀를 키워낸 할머니는 "벌어먹고 살다 보니 골병이 들어" 지난 10년 간 디스크 수술, 신장 수술 등을 7번 받았고 지금도 약을 달고 산다.
정 할머니는 며느리가 학습지 교사로 취직해 따로 사는 아들 가족의 소득이 늘었다는 이유로 지난해 7월 2년 간 혜택을 받았던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 차상위 지원 대상자로 전환됐다. 이후 지원 혜택이 줄어들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차상위 장애수당(3만원)과 건강보험 진료비 지원은 받았지만 기초수급자일 때보다 생계비와 병원비, 약값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애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노원구 복지사 이숙희씨는 정 할머니를 찾았다가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고 입원을 시키고, 구청이 지원하는 특별구호 대상자로 정했다. 할머니는 "죽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지 '좋은 사람'에게 걸려서 살았다, 은인이다"고 했다. 정 할머니는 이 달에 다시 기초수급자가 됐다. 며느리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차상위에서 다시 '탈출'한 할머니에게서는 어느 정도 안도감까지 느껴졌다.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극빈층인 기초수급자보다 한 단계 형편이 나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법정 계층 '차상위'. 준극빈층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계층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기초수급자보다 빈곤한 경우가 허다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것까지 포함)인 법정 차상위 계층은 170만명(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한 103만명 포함)으로 추산된다.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지 않고 순전히 벌어들이는 수입이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인 이들까지 합치면 468만명이다.
그러나 4대 차상위 지원 제도로 꼽히는 ▦건강보험 진료비 지원(본인부담금 경감) ▦장애수당(3~6급 경증ㆍ중증장애인연금제도는 별도) ▦한부모 가정 지원 ▦차상위 자활 지원제도 대상자의 총합은 70만명, 이중 2가지 제도를 동시에 지원받는 중복을 뺀 순수 혜택자는 63만명에 불과하다.
의료비 지원은 별도의 부양의무자 기준과 중증도를 따지는 등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법정 차상위 계층 중에서도 혜택을 받는 이들이 6분의 1밖에 안 된다. 장애수당(월 3만원), 한부모 가정 기본수당(아동 1인당 양육비 월 5만원)은 각각 5년, 7년째 오르지 않고 그대로다. 기초수급자의 경우 최저생계비 인상에 따라 매년 생계비와 자녀교육비(학용품비, 교재비 포함) 지원이 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