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미소 짓고 있어도 눈물이 흐른다. 유쾌하면서도 가슴 아린 이 영화, 관객의 갈채를 절로 부른다. 해체 위기에 놓인 한 가족의 유별난 사연을 유머와 감동으로 버무린 '디센던트'는 지상의 모든 가장과 소시민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응원가다.
남부러울 것 없는 재력을 지닌 사내 맷(조지 클루니)이 스크린의 중심에 선다. 지상 천국으로 불리는 하와이에서 조상대대로 뿌리 박고 살고 있는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운 아내가 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면서 삶의 벼랑 끝에 서게 된다. 작은 딸은 비뚤어지기 시작하고, 이미 부모를 실망시켰던 큰 딸 알렉산드라(쉐일린 우드리)는 반항기를 더한다.
소탈하고 검소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모범시민 맷은 큰 딸에게서 아내의 부정한 비밀을 전해 듣고 억장이 무너진다. 아무 것도 모르는 다혈질의 장인은 재력에 비해 아내에게 너무 박하게 굴었다며 맷의 속을 긁고, 큰 딸의 남자친구는 건방진 태도로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다.
거의 완벽하다고 믿었던 삶이 뒤통수를 마구 내려치고, 그 삶으로부터 도피하고만 싶은 때, 맷은 정면 승부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슬픔과 분노를 애써 감추며 떠나는 자에게 예를 다하고, 살아 남은 자들을 껴안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맷과 주변 인물들은 관객들에게 물기어린 웃음을 안긴다.
미국 작가 코이 하트 헤밍스의 동명 원작 소설과 섬세한 연출 덕을 보기도 했지만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클루니의 망가진 연기에 빚지고 있다. 아랫배의 윤곽이 드러나는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로 내달리는 그의 모습에선 한때 할리우드 최고 섹시가이로 불렸던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아내의 바람을 알고선 인적 드문 곳에서 서럽게 흐느끼는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관객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온다. 클루니가 27일 열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남자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려도 별다른 이의는 나오지 않을 듯하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사이드 웨이'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어바웃 슈미트' 등에서 삶의 비의를 낮은 목소리로 전하던 이 감독의 재능은 여전하다. 잔물결 같은 감정들이 모여 감동의 파도를 일으킨다. 괴팍하고 밉살맞은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빚어내는 재주 역시 남다르다. 페인의 전작들이 늘 그랬듯 '디센던트'는 잘 만든 소품처럼 보이나 마음 속 울림은 예전보다 오래 남는다.
'군도와도 같은 가족'을 하나로 묶어낸 맷이 두 딸과 TV로 부성애의 상징인 펭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 인상적인 내레이션이 흐른다. '펭귄은 조류지만 날지 못하고, 바다에 살지만 헤엄치지 못한다.' 맷이 꿋꿋하게 걸어가야 할, 남자가 아닌 아버지의 길을 영화는 그렇게 예고한다. 각오와 자부심 등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맷의 마지막 표정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바람과 파도소리 가득한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광, 하와이 전통 악기 우쿨렐레 선율에 실린 노래들이 풍미를 더한다. 올해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작품상 등 아카데미상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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