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나, 하루는 성당에서 피정을 갔는데 저녁 프로그램 중에 신부님께서 지금부터 한 사람씩 걸어 나와 죽은 제 얼굴을 들여다보라 하시는 거였다. 일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뒤섞여 있던 무리들 사이에 깊은 침묵의 골이 패였고, 이내 그 골짜기를 따라 우리들은 길게 한 줄로 섰다.
그러고는 제단 위에 놓인 나무 관 속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는데 놀랍게도 거기 정말 내가 있었다. 나는 너야, 라는 거울 속 나와의 맞닥뜨림. 그 앞에서 5분간 침묵하라 하셨던가. 어렸던 나는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어른들의 울음에 어안이 벙벙해져 훗날 저러지 않게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겠다, 일기에 썼더랬다.
그로부터 시작된 죄의식과 착한 척의 굴레는 늦은 밤 나를 그때 그 어른들처럼 통곡하게 만들곤 했다. 해가 뜨면 '착한 어린이표'를 떼고 '나쁜 어른표'를 가슴에 달던 나, 모순된 두 얼굴의 삶을 나도 지긋해하던 가운데 얼마 전 오규원 시인의 시 '죽고 난 뒤의 팬티'를 모두 앞에 낭독하게 되었다.
혹시 교통사고가 날까,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을 걱정하는 우리들의 기우, 그 우스움을 꼬집는 시에 여전히 폭소하던 우리들. 죽기 위해 사는 우리들이라지만 누군가 앞섰다는 소식에야 비로소 제 몫인 양 챙기게 되는 죽음…. 휘트니 휴스턴의 부음을 접하고 먹먹해진 마음에 예까지 썼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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