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떠난 지 3년 만에 팝 음악계의 또 하나 큰 별이 스러졌다. 신이 내린 목소리로 세계인을 사로잡았던 '팝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이 11일(현지시간)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음이 안타까운 것은 48세의 젊은 나이 때문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7,0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디바의 말년은 마약과 알코올 중독, 가정불화, 재정난으로 얼룩졌고, 마지막 가는 길마저 쓸쓸했다.
12일 AP 등 외신에 따르면 휴스턴은 11일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 힐스에 있는 베벌리힐튼 호텔 객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3시55분 숨을 거뒀다. 현지 경찰이 "타살 등 범죄 흔적은 없으며 사망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밝힌 가운데, 약물 쇼크 혹은 익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온라인 연예매체 TMZ는 휴스턴의 방에서 처방된 약물이 다량 발견됐으며, 그가 욕조에서 쓰러져 있었다고 전했다.
휴스턴은 세계 최고의 팝 음악상이자 그에게 6차례 트로피를 안긴 그래미상 제54회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숨져 음악계와 팬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이틀 전 그래미상 사전행사에 참석해 노래를 불렀고 당일 밤엔 전야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고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높이 올라간 만큼 나락도 깊었다. 22세 때인 1985년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이 나왔을 때 세계는 빼어난 가창력과 미모를 지닌 흑진주의 등장에 넋을 잃었다.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은 "스타덤에 오를 것이 자명한 가수"라고 극찬했고,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2,500만장이 팔려나갔다.
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힌 휴스턴은 92년 '보디가드'의 주연을 맡아 생애 최고의 히트곡 'I Will Always Love You'를 내놓으며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그는 창작자로서 재능은 부족했지만 목소리 하나만은 타고난 가수였다. 가스펠 가수인 어머니 시시 휴스턴과 R&B 가수인 사촌 디온 워윅, 대모(代母)인 솔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이 그의 음악적 울타리였다.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면서도 부드러운 음색과 절제된 감정 처리가 돋보이는 그의 노래들은 백인들, 나아가 세계인들의 마음까지 울렸다. 그러나 일부 흑인들에겐 지나치게 백인 취향의 노래를 부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보디가드' 이후 휴스턴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92년 동료 가수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결혼 초부터 불화설이 끊이지 않더니 브라운이 폭행 혐의로 체포되는가 하면 부부가 번갈아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휴스턴은 2010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1, 2년간은 매일 일이 끝나고 마약을 했다"고 고백했다.
마약과 알코올은 그의 목소리를 앗아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더 탁해지고 낮아져 힘이 넘치던 고음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2007년 브라운과 이혼하고 재기에 나선 휴스턴은 2009년 마지막 앨범 'I Look to You'를 내고 2010년 한국을 비롯한 월드 투어 공연을 했지만, 고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등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옛 명성은 사라졌지만 최근 16년 만에 출연한 영화 '스파클'의 제작을 겸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동료 가수들과 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슬픔과 애도를 표하고 있다. 휴스턴의 대모 아레사 프랭클린은 "너무 놀라워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애통해 했고, 머라이어 캐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목소리 중 하나였던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돌리 파튼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내 가슴도 찢어진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휘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 'I will always love you'"라고 애도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