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주재 특파원으로 부임하던 3년 전 중국의 한 중견 화가를 만났다. '58년 개띠'로 중국 중앙방송(CCTV) 드라마센터의 미술 총책임자인 그는 수묵 인물화에 정통한 국가 1급 미술사다. 그의 대표 인물화인 안진경(顔眞卿)과 개회(開懷) 등은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사람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인물과 사물의 정수를 파악해 사실적인 요소를 간단하면서도 세밀한 방식으로 필묵에 담는다. 사람이나 사물의 관점과 느낌을 표현하는데 들이는 노력과 관심은 기자나 화가나 다를 바 없다. 그에게 조르듯 그림에 대한 철학을 물었다. 그는 선문답 하듯 말했다."외사조화, 중득심원(外師造化, 中得心源ㆍ밖으로 대자연의 이치를 스승같이 배우고, 안으로 마음속에서 얻는다)."
지난 3년간 특파원 생활은 '외사조화, 중득심원'의 지혜를 좇아 '중국 그리기'에 매달린 고통스럽지만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베이징발 첫 기사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던 2008년 중국이 4조위안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며 글로벌 경제의 구원투수로 나선 역사적인 순간에서 시작했다. 이후 굴기하는 중국의 위상과 힘, 역동적인 경제발전상, 그리고 파생된 내부 모순 등은 면면이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빠르게 회복된 쓰촨 대지진 피해 복구현장, 서부대개발 관문인 충칭, 내수진작 열기로 들뜬 정저우 등 2, 3선 도시에서 벌어지는 대역사의 광경, 산업구조를 탈바꿈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세계의 공장' 광둥성 도시 등에서 직접 중국의 발전 가능성을 십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이다. '다시 중국'을 외치며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적극 뛰어드는 우리기업의 대응전략과 노력은 중국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라는 점에서 한층 중요하게 와 닿는다. 특히 중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독자 진출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현지기업과 손 잡고 어떻게 이익과 기반을 나눠가며 함께 동반성장 할 지를 고민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는 향후 2, 3년 밖에 남지 않은 우리기업의 대중국 시장진출 성패를 가늠하는 주요 척도가 될 전망이다. 또 중국과 대만간의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을 취재하면서 향후 이뤄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눈앞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10년, 20년을 내다보면서 우리 산업의 미래 성장동력의 기반이 될 한중 산업협력 사슬구조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한중 외교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고민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들과의 소통에서 이를 적절히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족갈등이 횡행하는 신장 위구르자치주 우루무치시 유혈사태 현장과 빈부격차가 심각한 광저우 빈민촌 등을 취재하면서 중국의 부조화와 차별, 불균형 등 중국의 아킬레스 건을 피부로 실감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을 거치면서 북한을 둘러싼 한중간 소통과 교감의 불일치는 앞으도 또 다시 벌어질 지 모를 불확실성 때문에 우려감으로 다가선다. 북중 국경지역인 훈춘과 단둥 등을 지난 3년간 6차례나 직접 찾았다. 북한은 밖에서 볼 때 변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큰 흐름에선 이미 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용등사해' 중국의 등에 올라탈 경우 더 빨라질 것이다. 암흑 속에서 희미한 달빛을 드리우고 있는 북한을 수묵화로 그려 내려면, 달을 감싸고 있는 구름 같은 중국을 우선 제대로 그려야 한다.
한중 수교 20주년. 중국을 그리는 우리 수묵화는 어느 단계인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통과의례 과정이 필요하다. 기자도 지난 3년간 그려온 미완의 수묵화를 접으며, 아쉬움과 석별의 정을 붓 끝에 남긴 채 베이징을 떠난다.
장학만 베이징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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