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5년 살 것 같대요. 다시 (구치소에) 오면 정말 죽을 거예요. 다시는 나쁜 짓 안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아저씨가 사주던 밥 먹고 싶어요."
11일 서울경찰청 학교지원경찰(스쿨폴리스) 이상인 경위는 자신이 자주 찾아보던 김승민(15ㆍ가명)군의 편지 몇 통을 조심스레 내보였다. 삐뚤삐뚤 연필로 눌러 쓴 편지 내용은 간절했다. 승민이는 지난해 11월 특수 절도 및 강도 혐의로 구속돼 서울 송파구 성동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경위는 "아이들의 잘못을 감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흉악한 10대 범죄자와 보호해야 할 결손가정의 청소년이 동전의 양면처럼 가깝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다. 이 경위는 "최근 사회 분위기가 청소년들을 조직폭력배처럼 몰아가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승민이 엄마는 집을 나간 지 오래였다. 운동선수였던 승민이 아빠도 수시로 교도소에 드나들더니 급기야 돈 벌어 온다며 집을 나갔다. 승민이 친구 이희성(15ㆍ가명)군도 2010년 부모가 이혼하면서 버려졌다. "경기 여주에 있는 외가에 가 있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 엄마는 희성이를 돌보게 된 복지사가 전화를 걸자 "다시 전화하겠다"며 끊은 뒤 연락이 두절됐다.
수개월치 월세가 밀려 방을 빼야 했던 승민이와 거리를 떠돌던 희성이는 PC방과 고시원을 전전했다. 밤 10시 청소년 출입금지 시간이 되거나 돈이 떨어져 쫓겨나면 경비가 소홀한 건물을 찾아 노숙을 했다. 순찰 도는 경찰에게 들키면 다른 건물로 옮겼다.
그러면서 돈을 빼앗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소위 나쁜 짓은 다했다. 등하교시간에는 학교 어귀에서 대상을 물색했고 밤에는 술에 취한 사람을 노렸다. 두 친구와 어울렸던 다른 학생은 "잘못인 것은 아는데 당장 먹거나 잘 데가 없었다. 그래서 돈을 빼앗아 PC방에서 추위를 피하거나 떡볶이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웠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깨달은 승민이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술, 오토바이, 돈을 멀리해"라고 당부했다. 미용사가 되겠다는 꿈도 품고 있다.
서울보호관찰소 청소년상담사 윤태순씨는 "여름에는 놀이터에서 자기라도 하지만 추울 때는 찜질방이나 PC방에라도 가야 하는데 그 돈이 어디서 나겠느냐. 법이 허용한다면 노점상이라도 차려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집도 절도 없는 아이를 학교에서도 내쫓고 사회에서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이상인 경위는 "이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면 범죄자라기보다 마음이 아픈 어린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후 처벌만 강조하기보다 결손가정 등을 지속적으로 끌어 안을 수 있는 보호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우리 고시원 있을 때 좁아터진 침대에서 서로 자겠다고 가위바위보 하던 때도 있었는데, 넌 이제 좋겠다." 승민이가 편지에서 친구를 부러워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엄마 집에서 맨날 잘 수 있으니까."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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