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가 그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통과시켰다. 눈앞의 작은 정치적 이해에 사로잡혀 금융질서의 근간을 흔들려는 입법자들의 작태는 곳곳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법과 원칙 허물기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똑똑히 보여 주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말은 번지르르하다.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으로 돈을 잃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국회가 외면할 수 없고, 피해자들의 딱한 사정에 비추어 '특별한 예외' 인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말을 그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지자마자 여당은 물론, 정치 교두보 확보를 겨냥한 야권까지 앞을 다투어 피해자 구제를 약속했다. 그때도 여야의 무리수는 지적됐지만, 정치권 특유의 '성의 표시용'행태로 보아 넘길 만했다. 그러나 비록 소위에서라도 국회가 사회 근본질서를 흔드는 입법을 실행했으니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특별법(안)은 현행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손실 보전을 받을 수 없는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 채권자의 피해액을 55%까지 보상하는 게 골자다. 구제 대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영업이 정지된 18개 저축은행의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 채권자 등 8만 여명이다. 1,025억원에 이르는 보상액은 예금보험기금으로 조성한 '저축은행 특별계정'에서 끌어다 쓸 예정이다.
특별법(안)의 이런 내용은 'IMF 위기'이후 금융개혁의 핵심 장치로서 도입돼 정착된 예금자 보호제도를 뿌리째 흔든다. 5,000만원까지는 예금보험공사가 보장하되, 그 이상은 이용자의 자기책임 영역에 둔다는 게 10년 넘게 통해온 대원칙이었다. 아무리 작아도 이런 대원칙에 구멍이 뚫리고 나면 전체 금융질서를 지탱해온 시장의 신뢰는 물론,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자기책임의 원리마저 흐트러진다. 더욱이 은행과 보험사 등의 이용자들이 추렴해 조성한 예보기금 특별계정을 함부로 갖다 쓰겠다는 발상은 헌법적 권리인 재산권 침해 소지까지 있다.
국회가 조속히 현재의 인지 부전(不全)에서 벗어나 입법자 본연의 이성을 회복하고, 당장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특별법안을 부결하길 촉구한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입법자들이 법치질서를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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