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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 조선 선비의 중국기행문 '표해록' 따라…항주에서 북경까지 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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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 조선 선비의 중국기행문 '표해록' 따라…항주에서 북경까지 2500㎞

입력
2012.02.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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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의 운하길을 걷다/서인범 지음/한길사 발행ㆍ416쪽ㆍ2만원

부친상을 치르러 임지 제주에서 전남 나주로 향하던 최부 일행이 풍랑을 만난 것은 성종 19년(1488년). 보름간 표류하며 물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동이 나 생사를 오갈 때쯤 도착한 곳은 중국 절강성 태주부였다. 처음에는 왜구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조선인으로 밝혀진 뒤에는 북경으로 안내 받아 황제의 상까지 받고 압록강 건너 조선으로 무사히 돌아온다. 표류한지 6개월만이다. 난파해 제주도에 도착한 하멜 일행이 13년간 조선에 억류됐다가 탈출에 성공해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간 데 비하면, 최부가 받은 대우는 후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하멜이 돌아가 표류기를 썼던 것처럼, 최부도 성종의 명을 받들어 강남에서 북경, 요동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8,800여리(3,200㎞)에서 본 명나라의 풍물과 경관, 사람들 이야기를 <표해록(漂海錄)> 에 담았다. 당나라 시기 중국 모습을 담은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 , 원을 묘사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과 함께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히는 이 책은 2004년 한길사에서 한글 완역ㆍ역주본이 나왔다.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 는 그 번역을 주도했던 서인범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최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쓴 글을 모은 기행문이다. 최부가 조선으로 건너오기 위해 북경에서 압록강을 향하는 구간을 제외한, 항주에서 영파를 거쳐 소주, 양주, 서주, 제녕, 덕주, 천진, 북경까지 2,500㎞의 길을 당시 최부가 움직였던 조운로라는 운하 근처를 따라 이동하면서 쓴 기행문을 모았다.

최부가 일기 형식으로 자신의 일정을 꼼꼼히 적어나갔듯 서 교수 역시 기행 과정의 소소한 일들을 차분히 기록하듯 써나간다. 가는 곳마다 500여 년 전 최부가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표해록> 을 발췌해서 읽는 느낌이 든다. 최부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그 여로에 있는 왕희지의 서법박물관이나 의천상이 전시된 절 고려사, 루쉰 기념관 등도 소개한다. 운하 길에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현 루쉰공원) 의거 이후 일본의 임정 요인 체포에 쫓기던 김구 선생의 피난처도 들어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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