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시안이 방금 집에서 출발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 기자 출신 프랑수아 나바르(49)의 휴대폰으로 긴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근 이혼과 섹스비디오 등으로 뉴스의 한 복판에 선 미국의 모델 겸 배우 킴 카다시안(32ㆍ사진)의 동선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나바르는 잽싸게 포르쉐를 몰고 카다시안의 하얀색 롤스로이스를 쫓았다. 추격전이 계속되면서 주위의 차들도 늘어났다. 롤스로이스는 할리우드 중심가의 한 미용실 앞에서 멈췄다. 미용을 마치고 나오는 카다시안을 향해 수백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나바르는 이날 찍은 사진으로 수십 만 달러를 벌었다.
연예계의 CIA (Celebrity Intelligence Agencyㆍ연예정보국)
방대한 정보력은 기본이고, 인내심과 순발력을 요하는 직업. ‘악질’, ‘거머리’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연예계의 중앙정보국(CIA)이라 불리는 파파라치다.
연예 뉴스사이트 스플래시 뉴스의 폴 태틀리는 매일 오전 전세계 정보원들이 보내오는 첩보를 분류한다. 미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가 그의 댄서와 칠레에서 잠자리를 가졌다는 것부터 영국 왕세자비 임신설,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이 비행기에서 휴대폰을 끄지 않고 말썽을 부렸다는 시시콜콜한 가십까지... 첩보는 전세계 1,000여명의 파파라치에게 다시 전달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파파라치와 이들이 고용한 정보원만 해도 100여명. 호텔, 식당, 영화관, 공항, 병원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이나 간호사, 운전사 등이 이들 정보원의 정체다.
스타들이 밀집해있는 할리우드는 파파라치의 낚시터다. 스플래시 뉴스의 대런 뱅크(36)는 할리우드 선셋대로 주변 50㎢내 거리와 12개 구역을 매일 순찰한다. 스타들이 즐겨 찾는 맛집인 ‘아이비’ ‘보아’와 ‘프레드 시걸’ 등이 주목 대상이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부부와 톰 크루즈의 저택 주변도 샅샅이 뒤진다. 뱅크는 “이곳은 내 손바닥 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크루즈의 딸 수리가 태어날 때까지 무려 석달 동안 그의 저택 앞에 진을 쳤다.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매일 18시간 동안 잠복근무한 끝에 가장 먼저 크루즈 가족의 출산 후 첫 외출 사진을 포착했다. 사진은 수십 만 달러에 팔렸다.
연예사진 산업은 매년 폭발적인 증가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 이미지 사이트인 코비스의 개리 솅크 사장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20% 이상 늘었다”며 “전세계 사진시장의 50~60%는 연예사진이 차지한다”고 밝혔다. 코비스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이 디지털 이미지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1989년 설립한 이 분야의 선두기업이다. 고용한 전문 파파라치도 가장 많다. 예술품이나 유명인사 사진 등 각종 이미지의 디지털 저작권을 사들여 사용료를 받고 판다. 이 회사가 보유한 디지털 이미지만 1억개 이상. 스플래시 뉴스를 인수한 이후 최근 5년 동안 70여개국 500여개 연예잡지의 커버를 장식했다. 96년 연예사진 전문업체 ‘X17’을 차린 나바르의 연 소득은 1,000만달러(약 110억원)다. 연예사진 수요의 증가로 파파라치도 크게 늘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언론자유 VS 인권침해
파파라치의 과도한 취재경쟁과 이로 인한 스타의 인권침해, 특히 97년 파파라치의 추격전에서 목숨을 잃은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건 이후 파파라치에 대한 비판은 극에 달했다. 지난해 영국 출신 할리우드 스타인 휴 그랜트, 시에나 밀러 등이 파파라치의 과도한 사생활 침해를 놓고 법정공방을 벌였다. 뱅크는 “전문 파파라치들은 그들만의 룰이 있다”며 “이혼 직후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쫓는 40명의 파파라치는 스피어스의 차를 경호하며 ‘박스’ 형태로 추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도 대중의 스타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파파라치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에 대한 동경, 그리고 그들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이 스타의 사진에 대한 욕구를 부채질한다. 최근에는 스타의 인물 스냅샷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이 인기다. 솅크는 “대중은 스타의 아름답게 꾸민 사진보다 흐트러지더라도 자연스런 사진을 더 보고 싶어한다”고 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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