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미래에 중국이 맞닥뜨릴 가장 큰 도전은 빠링허우(八十後) 세대다."
베이징, 홍콩 등지에서 30년 가까이 중국의 개혁ㆍ개방과 사회 변화를 지켜본 프랑스 언론인 카롤린 퓌엘(49)씨는 향후 중국이 직면할 가장 큰 과제로 1980년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꼽았다. 통제와 검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노동이나 환경문제, 사회 불평등 등에 민감한 이 세대가 중국의 또 다른 변화를 끌고 나갈 동력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차기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의 미국 방문(14일)을 앞두고 중국에서 민주주의의 가능성, 한중 관계 등을 주제로 그를 이메일 인터뷰했다.
퓌엘씨는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외교학원에서 수학했으며 1984년, 87~88년에 주중 프랑스 대사관 언론 보도관을 거쳐 1990년대에는 리베라시옹, 르푸앵의 홍콩 주재 특파원을 지냈다. 98년부터 베이징에 상주하며 중국과 동남아, 북한 등의 기사를 써왔고 2004년부터 파리정치대학에서 중국 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과 작가, 문학에 관한 15권의 저서를 낸 예술 평론가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중국을 읽다> (푸른숲 발행)에서는 현장에서 지켜 본 덩샤오핑(鄧小平) 등장 이후 최근 30년 동안의 격동하는 중국 현대사를 담았다. 중국을>
-중국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은 무엇인가? 공산당인가? 인민인가?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덩샤오핑 같은 탁월한 지도자인가?
"중국을 확실하게 세계의 중심부에 다시 우뚝 서게 하려는 의지가 동력이다. 그런 의지는 중국의 재창조를 원했던 마오쩌둥이 일찍부터 천명했다. 그러나 마오는 문화혁명 같은 일탈을 겪으며 급속도로 길을 잃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중국을 세계 주요 경제국에 올려놓겠다고 천명했고, 이를 실현한 이가 개방ㆍ개혁의 정책을 시작한 덩샤오핑이다. 천안문 사태로 중단된 개혁 정책을 덩샤오핑의 후계자들(주룽지, 장쩌민, 후진타오, 원자바오)이 다시 실행해 왔다. 이러한 정치적 의지의 배경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중국인의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인은 한 세대 동안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받아 들여왔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원했던 것을 어느 정도 달성했고 새로운 성장의 추동력을 찾아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향후 중국이 맞닥뜨릴 가장 중대한 과제는 무엇인가?
"중국 사회는 개방과 개혁으로 크게 변했고, 이 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이 빠링허우 세대다. 더 나은 노동 환경과 높은 임금을 요구하며 2010년 직물 노동자 파업이 시작됐고, 더 나은 교육과 정보의 수혜를 입은 도시 청년들이 국제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검열이 있지만 그들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세계의 귀퉁이와 접속하고 있다. 이 세대는 불평등과 같은 사회 문제, 환경 보호, 삶과 제품의 질, 인간과 심지어 동물의 권리까지도 민감하게 바라본다. 당국이 또 다른 통제 방식을 강구해야 할 상황이다. 이것이 중국이 맞닥뜨릴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을 'G2'로 평가할 수 있는가?
"중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에 도전하면서 일찌감치 'G2'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세계경제를 이끄는 주축이었던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운용 능력이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지금 그들은 경제 침체, 대량 실업, 부채 문제에 직면해 있다. 동시에 그 때문에 엄청난 재정을 운용하는 중국은 'G2'라는, 세계 무대의 상층에 올라 설 수 있게 됐다. 중국의 정치가들은 이런 그들만의 이점을 잘 활용해왔다. 또 중국은 매우 일찍부터 새로운 시장(주로 녹색 경제,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기술)에 대해 조사해왔고, 수출 감소에 대비한 내수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벌써 서구의 발전 단계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은 아직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90위 정도일 뿐이다. 또한 지방 정부의 막대한 부채, 청년 실업, 성장 감속(2012년 7% 전망) 등 문제도 많다.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자신들이 막강한 힘을 갖춘 'Big one'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전면 부인했다. 대신 'G2'는 가능하며 세계는 다국의 질서라고 주장한다. 중국 지도부의 진짜 야망은 미국과 유럽연합과 아시아연합 사이에서 결정권을 쥐는 것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것은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의 변화를 의미하나?
"지난 6개월 동안 대만 대통령 선거전을 두고 중국의 대중매체와 SNS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를 지켜보며 흥미로웠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는 1996년 미사일 위기 이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중국이 서구 민주주의의 길을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길 원한다. 더 이상 독재는 아니지만 강력한 국가 통제 아래서 지역 차원(마을이나 지역구 선거, 오너협회, 비정부기구(NGO)처럼)의 점진적인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국가 자본주의라는 하이브리드 모델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아랍 혁명 같은 해외의 정치적 변화, 중국 내 젊은 세대의 정치적인 성숙 정도, 다양한 미디어의 영향 등을 변수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차기 중국 지도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보통 중국 공산주의의 차기 지도부는 정말 힘이 실리기 전까지 카드를 보여주지 않는다. 후계자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주석이 되려면 올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는 공산당의 비전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그 시점이 201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가 끝나고 그 훨씬 뒤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주석이 되고 그의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 시진핑은 핵심 사업을 공언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불평등과 부패, 성장 불균형에 맞서 격렬하게 토론하고, 내수시장의 소비를 촉진하고 국제무역에서 호혜주의를 장려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음 세대 중국 정치의 새로운 양식을 말하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알다시피 시진핑은 매우 신중한 인물이다. 그리고 중국 정치 무대에는 린뱌오(林彪ㆍ너무 소란스럽고 너무 빠르게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공표됐다가 1971년 영문 모를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나?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는 주로 안정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중국이 희망하는 것은 북한 경제와 정치 발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점진적으로 개방과 개혁의 길을 열어 북한을 조종하는 것이다. 이미 북한에서는 중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일고 있다. 중국에 악몽이라고 한다면, 강력한 민족 정부로 한국이 통일되고 미국이 핵 방어 통제 시스템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악몽은 중국 동북지역에 수백만의 북한 난민들이 밀려들어올 가능성과 북한 정권의 극심한 내분 상황이다. 아마도 중국은 가능한 한 한반도를 평화와 안정의 상태로 지속시키면서 그 속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추구할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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