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먼츠 맨/로버트 M.에드셀, 브렛 위터 지음·박중서 옮김/뜨인돌 발행·624쪽·3만3,000원
미켈란젤로 살아 생전 이탈리아 밖으로 나간 유일한 작품인 '성모자'상은 굵직한 전쟁 때마다 전리품으로 약탈당했다가 전쟁 후 다시 원주인에게 돌아가길 반복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소금광산에 처박히는 수난을 겪었다. 조각상은 연합군의 특수부대인 '모뉴먼츠 맨'(기념물 전담반)의 조지 스타우트 지휘로 다시 벨기에로 돌아왔다. 오스트리아 알타우세 광산이 언제 소련 점령지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념물 전담반은 전리품으로 얻은 독일군의 양가죽 코트로 '성모자'상을 둘둘 싸서 벨기에로 보냈다. '믿거나 말거나'류의 TV 프로그램에나 나올, 진기하지만 있을 법한 이런 이야기는 2차 대전 중 기념물 전담반에 다반사로 있던 일이다. 다만, 잊혀졌을 뿐이다.
저자 로버트 M 에드셀은 1990년부터 유럽 전역을 발로 뛰어 기념물 전담반의 활약을 추적해 책으로 정리했다. 기념물 전담반은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도와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간 문화재와 예술품을 환수하는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다. 미술품 복원전문가, 건축가, 조각가, 시인, 고고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13개국 350여 명이 참여해 1944년 6월부터 1945년 9월까지 활동했다. 책은 이들 가운데 10여 명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자 출신의 로널드 에드먼드 밸푸어 소령, 조각가 워커 행콕, 루브르박물관 자원봉사자 로즈 발랑 등은 평범한 일상을 뒤로하고 전쟁터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이들의 초창기 임무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건축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지만 전운이 짙어지면서 강탈된 예술품의 행방을 찾는 쪽으로 변해갔다.
기념물 전담반이 활동한 건 1944년이지만, 책은 1938년 미술학도였던 히틀러가 2차 대전 중 수천 점의 미술품을 약탈하기 시작한 과정부터 소개한다. 미술학교 입시에 낙방했던 히틀러는 미술품 수집에 집착했고 심지어 연합군이 베를린 근처로 진격했을 때도 밤마다 간부들에게 미술에 대해 강연했다. 매년 성탄절과 생일에 히틀러는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 목록을 담은 앨범을 한 권씩 선물 받았다. 그가 받은 앨범은 총 31권이었다. 그는 이 미술품들을 그의 고향 오스트리아 린츠에 세울 예정이었던 '제국 미술관'에 전시할 계획이었다.
기념물 전담반이 활동하면서 연합군이 독일 남부에서 발견한 약탈 미술품 보관소는 1,000곳 이상이었다. 여기에는 회화, 교회 종, 스테인드글라스, 종교 관련 물품, 필사본, 와인, 금, 다이아몬드, 곤충 표본 등이 가득했다. 성모자상이 있던 알타우세 광산에 은닉한 작품들 가운데 회화만 1만6,087점에 달했다.
가장 큰 보관소 중 하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었다. 로트실트 가문의 보석 컬렉션, 세계적 수집가 피에르 다비트 바일의 소유였던 1,000여 개의 은 세공품 등 압수 건수만 2만1,000건이 넘었다. 이들 물건을 포장하고, 분류 목록을 작성한 뒤 원래 소유주가 있는 국가로 돌려보내는 데 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책은 10여명의 기념물 전담반의 일화를 통해 이 과정을 들려준다. 대표적인 미술품 반환 과정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재구성한 뒤, 각 장의 주인공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첨부해 사실성을 높였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읽는 맛을 더하지만, 부대원들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2차 대전 중 나치가 시도한 미술품 약탈 실상에 관한 설명은 미진한 감이 없지 않다. 저자도 아쉬움이 많은 모양이다. 이 나머지 이야기를 다룬 속편 <이탈리아 구하기> 를 곧 출간한 예정이다. 이탈리아>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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