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은 대학의 생명이다. 자율성이 희박한 대학에서 시대를 열어갈 창의적 지식과 학문이 번성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들이 극도로 억압되었던 1970~80년대를 보내면서 우리 사회에는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 대학 정책도 꾸준히 그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학 자율화는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울 것처럼 보였다. 선거 때부터 출범 이후까지 현 정부는 계속 대학 완전 자율화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대학입학정책에 관한 권한까지도 한ㄱ국대학교육협의회에 이관하고 대학이 학생을 마음대로 뽑을 수 있는 입학사정관제를 국가재정을 대폭 지원하면서까지 서둘러 확대했다. 자율화라는 말밖에는 별다른 대학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반값 등록금' 논란이 모든 것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대학 등록금 부담이 너무 크다는 여론 속에서 국회는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는 법률을 순식간에 통과시켰고, 감사원은 대학재정 운영 실태에 대해 전례 없이 대대적인 감사를 실시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구조조정위원회를 앞세워 불과 몇 달만에 부실대학을 선정해 공표했다. 정부의 강력한 압박에 대학들은 초유의 등록금 인하 계획을 내놓았다.
이제 누구도 대학 자율화를 말하지 않는다. 대학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 그야말로 대학 자율화가 일순간에 몰락한 것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대학에 있다. 들어오려는 학생들이 항상 넘쳤기 때문에 대학들은 계속 등록금을 올릴 수 있었다. 그 피땀 어린 돈을 말처럼 연구와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만 쓴 것도 아니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입시위주 교육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것을 줄여주려는 대학들의 노력은 너무 미미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들은 총장직선제를 고집하면서 변화를 거부했다. 대학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배신당했고 대학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정부의 책임도 대학보다 결코 작지 않다. 대학 자율화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야 하며 그것을 정책적으로 이끌 책임은 정부에 있다. 현 정부는 그 책임을 방기했다.
겉으로는 자율화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사건건 규제하는 식으로 대학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잘못도 크지만, 대학들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무능함이 더 중대하다.
세계 대학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대학의 질적 발전을 유도하고 뒷받침하기 위해 그 이상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중대한 시기에 대학 정책이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통탄스럽기만 하다.
감사나 규제만으로는 대학의 책무성을 확보할 수 없다. 세계적인 대학을 키울 수도 없다. 대학들이 자율적인 책임 의식과 의지를 갖고 스스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유도할 대학 제도와 정책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대학평가체제부터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정부가 직접 대학을 평가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처럼 몇 가지 양적 지표로 대학을 평가해서 부실대학의 낙인을 찍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런 방식은 대학들로 하여금 그 지표를 높이기 위한 편법과 꼼수에만 골몰하게 만들 뿐이다.
대학평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이 있다. 양적, 질적 평가를 결합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대학평가체제를 구축해서 대학들이 교육과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바탕으로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해 나가야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 그리고 질적 발전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만약 현 정부가 그 정책적 책임을 끝까지 회피한다면 다음 정부를 기대해 볼 수밖에 없지만,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서남수 홍익대 초빙교수·전 교육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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