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서울 대학가 주변 전용면적 125㎡ 아파트에 사는 김나눔(65)씨는 일부 공간을 세입자에게 월세로 내주며 매달 받는 45만원의 임대료가 노후생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김씨 집은 독립된 현관과 부엌, 화장실, 침실 등 별도 임대 공간을 갖춘 '부분임대 아파트'라 세입자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김씨는 자녀가 모두 결혼으로 분가를 해 남는 공간을 이용해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다.
2017년. 이공동(47)씨가 사는 아파트는 좀 독특하다. 한 층당 전용면적이 84㎡인 지상 3층 복층 아파트인데 두 가구가 공간을 사이 좋게 나눠 쓴다. 1층과 3층은 각각 한 가구가 독점하고, 2층은 절반씩 쪼개 산다. 이씨는 1층을 주거공간으로 활용하고 2층 중 절반은 재택근무용 사무실로 활용한다. 3층에 사는 박임대(45)씨는 2층 절반을 대학생 등 독신자들을 대상으로 임대를 줘 월세를 받는다. 한 집에 3가구가 나눠 쓰는 셈이다.
집을 여럿이 나눠 쓰는 시대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경제발전으로 한 집에 한 가구만 사는 것이 어느새 보편화됐지만, 이젠 다시 두 세 가구가 한 집에 함께 사는 주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1980년말 90년대 초 인기드라마'한지붕 세가족'의 부활인 셈이다.
'한 지붕 다가족'주택 열기를 선도한 것은 '땅콩주택'이다. 한 개 필지에 2가구가 나란히 지어진 모습이 땅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국에서는 '듀플렉스(duplex)홈'으로 불린다. 단독주택의 쾌적함을 누리면서 땅값과 건축비용을 두 집이 같이 내 비용부담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땅콩주택은 한 개 필지에 3, 4가구가 함께 사는 '완두콩주택'으로 진화하고 있다.
개인 사생활 보호가 필요한 곳은 독립 공간으로 격리하고 취사나 여가 공간 등은 다른 입주민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셰어하우스(share house)'도 등장했다. 이웃과 격리된 원룸형 일색으로 지어지던 도시형 생활주택에 공동체 정서를 도입한 것이다.
국내 1호 셰어하우스로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연희 마이바움'이 있다. 층별로는 지하 1층은 7대의 주차공간이 확보돼 있고, 지상 2~5층은 전용 10~18㎡ 규모 37실의 원룸으로 구성됐다. 1층에는 입주민 공용공간인 카페테리아가 있어 저렴한 가격에 식사와 간식을 할 수 있고, 한 켠에는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독립된 공간을 중시하는 아파트에서도 공간 나눠 쓰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2세대 분리형 설계라고도 하는데, 침실은 물론 출입문 화장실 부엌 등을 별도로 마련해 임대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아파트다. GS건설과 대우건설 동부건설 벽산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이 중대형 미분양 해소를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보급하고 있는 평면이다.
부분 임대형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건 2009년 ㈜한양이 인천 영종하늘도시에 선보인 '영종 한양 수자인' 아파트. 전용 59㎡형 소형 아파트의 내부공간 일부를 떼내어 취사가 가능한 독립된 원룸을 만든 것이다. 실내 가운데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거실과 침실을 갖춘 집주인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왼쪽은 월세를 놓을 수 있는 원룸으로 꾸민 설계다.
이후 벽산건설이 부산에서 '장전 벽산 블루밍'을, 동부건설은 서울 동작구 흑석뉴타운에서 '동부 센트레빌 2차'를 각각 부분임대형 아파트로 설계해 내놓아 시장의 호평을 받았다.
GS건설은 한발 더 나아가 아파트 한 채에 3가구가 각각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욕실과 주방공간을 따로 둔 '더블 임대 수익형 평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한 집에 2가구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설계한 새로운 평면 '투인원(2 in 1)'을 개발, 조만간 시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LH가 선보이는 부분임대형 주택은 ▦나눔형(home share) ▦쌍둥이형(twin) ▦복층형(duplex) 등 3가지 모델. LH는 1ㆍ2인 가구가 밀집된 대학가 주변이나 역세권, 산업단지 인근에서 LH가 짓는 공공아파트에 적용할 예정이다.
전용 74ㆍ84㎡ 에 도입되는 나눔형은 자녀 결혼 등으로 가족 수가 줄었을 때 집안 일부를 별도 공간으로 분리해 임대를 줄 수 있도록 한 설계. 기존 민간아파트의 부분 임대형 설계와 비슷한 구조다. 쌍둥이형은 전용 59㎡ 용으로, 평소에는 3명 이상이 거주할 수 있지만 집을 똑같이 둘로 나눠 부분임대를 주거나, 재택근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구조다. 전용 84㎡에 적용되는 복층형은 1층과 3층을 각각 개별 세대가 독립적으로 사용하고 2층을 절반씩 나눠 쓰는 구조다. 3가지 타입 모두 가구별로 별도의 현관문이 설치된다.
부동산개발업체 피데스개발 김승배 대표는 "주택 소형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주택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집주인이나 세입자나 모두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아직까지는 부분 임대형 설계가 단순한 수준에 머물?있지만, 앞으로는 보다 파격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입주자들끼리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주택들이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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