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에 꼭 타인의 희생이 필요할까/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ㆍ한윤진 옮김21세기북스 발행ㆍ504쪽ㆍ2만2000원
'인간은 선하다. 다만 무리가 되면 악인이 된다.'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배우이자 풍자ㆍ코미디 작가 요한 네포무크 네스트로이는 낯설다. 그러나 그가 남긴 말에는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다. 인간 사회의 본질을 꿰뚫은 2세기 전의 격언을 머리말보다 앞에 둔 이 책은 도덕성과, 그 반명제로서의 이기주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체제의 경쟁이 와해된 글로벌 시대에서의, 기후 변동 상황과 경제 공황이 난무하는 정보ㆍ다문화 사회에서의 도덕이란 무엇인지를 책은 따져 든다. "인간은 착하게 살려고 하는 동시에 타인을 무시하거나 저버릴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전제 아래.
독일의 철학자인 저자는 도덕을 직접 파고들기보다 그 반명제인 이기주의의 본질을 천착하는 논증 방식을 택한다. 플라톤, 홉스, 다윈, 헉슬리, 흄, 심지어는 19세기 러시아의 극단적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 등 인간의 본성과 그에 대한 통제를 두고 철학적으로 통찰한 사상가들을 조망한다. 주제로 정리한 철학사라 해도 좋을 책이지만 진화생물학까지 끌어들이는 저자의 풍성한 사유와 유려한 입심 덕에 독자들은 지적인 산책으로 끌려들어간다.
책은 인간에 대해 가차없는 이해를 요구한다. 고대 이후 변함없이 전개돼 온 전쟁에의 탐닉,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고통을 대다수가 모른 척한 '착한 사마리아인 실험' 결과 등 인간의 부정적 행태는 최근의 세계적 금융위기까지 이어진다. 곧 자본주의의 본성에 대한 규명이다.
그러나 책 전체는 철학에서 사회생물학에 이르는 도덕 논증이 관통하고 있다. 저자는 아무리 급진적인 변동이 세계를 구속하고 있을지라도 '인간임'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대전제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경제, 사회, 정치는 개선될 수 있다는 궁극의 희망을 철학의 이름으로 제시한다. "두 팔 걷어 올리고 사회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면서.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사회에 맞게 프로그램"됐기 때문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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