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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아, 또 속았구나' 후회하지 않기

입력
2012.02.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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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등록금과 학원비 인하, 대형마트 규제로 지역소상공인 보호, 비정규직 차별 해소, 집값과 전ㆍ월세가 안정,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4ㆍ11 총선을 앞두고 최근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제 18대 총선을 앞둔 2008년 3월 참여연대 등 전국 1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가 발표한 '민생 5대 표준공약' 내용이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통합민주당)이 내놓은 공약을 살펴 빠뜨려선 안 될 내용을 5가지로 간추려 제시했던 내용이다. 여야 정당들은 표준공약 발표를 전후해 숱한 약속을 쏟아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기세를 잡은 한나라당은 '(대기업)출총제 폐지, 지주회사 규제 완화, 세율 인하' 등을 약속했고, 열린우리당을 흡수한 민주당은 '공공요금 상한제, 대학등록금 후불제'까지 들고 나왔다.

8년 전 2004년 제17대 총선 때는 어땠을까.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이었지만 민생과 관련된 공약들은 여전했다. 여야 모두 청년실업 해소를 앞세웠다. 이어 '중소기업 지원, 대ㆍ중소기업 협력체계 강화'를 간판으로 걸고 기금 마련 세제 지원 기구 설립 등 머리로 짜낼 수 있는 모든 대책이 쏟아졌다.

두 차례의 총선을 돌아보고, 새로운 총선을 맞으면서 결론은 '아, 또 속았구나'하는 후회와 '이번엔 절대 속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이다. "내놓았던 공약이 절반만 지켜졌으면 우리 사회는 벌써 천국이 되었을 게다"는 말도 나왔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과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야당이 이러한 약속들을 했다는 점이 문제다. 어느 누가 불쑥 내뱉는 말이 아니라 정당의 공식적 과정과 절차를 통해 나왔음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요즈음 나오는 정당의 공약을 보면 '아, 또 속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8년 전에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ㆍ중소기업 협력 강화'나 '청년실업 해소'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이행 가능성을 가늠해 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출총제 폐지 논란이 4년 만에 부활한 것이나, 비정규직 대학등록금 대형마트 문제에 대해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비책(?)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도 우습다. "그러한 해법이 있는데 그 동안 뭐하다 이제 와서 난리를 피우느냐"는 힐난이 없을 수 없다.

개인이라도 4년 전에, 8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같은 약속을 하려면 민망하다. 적어도 "그때 그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랬으니 이번엔 꼭 지키겠다" 정도의 사과와 반성은 있어야 하는 게 세상이치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간판이 달라졌다고,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통합당으로 바뀌었다고 사과와 반성의 주체가 사라졌을까. 공약에 이끌려 투표를 했다간 다음 4년이 채 오기 전에 '아, 또 속았구나'하며 손가락을 자른다느니 붓두껍을 던진다느니 하며 울분을 삭여야 한다.

나는 그래서 정당과 개인의 공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사람을 보고 투표권을 행사할 생각이다. 후보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일단 뒷전으로 놓고, 그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에 관심을 쏟아야겠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알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 하지만 공약보다 사람 됨됨이 쪽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가 했다는 일, 그가 썼다는 감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으니 하나의 방편이 될 듯도 싶다.

4년 전이나, 8년 전이나, 혹은 4년 후나 8년 후나 우리에게 필요한 공약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를 하겠다면서 그것을 모를 리도 없겠고, 설사 모르면 유권자에게 또 국민에게 물어보면 되겠지만, 그렇게 실행할 수 있는 성품은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총선은 그러한 후보와 정당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보기에 화려하고 듣기에 솔깃한 공약일수록 이뤄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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