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한 단독 주택에서 근 20년을 살았더랬다. 시골도 아니면서 사는 모양새가 마치 부락 같았던 그 동네에서 내 집만큼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초입에 자리한 슈퍼였다. 장사의 지속 여부는 주인의 부지런함이 관건인 터.
게다가 외상이라는 훈훈한 믿음, 그 상징의 조커를 누구나 손에 쥐었으니 천국이 이와 달랐으랴. 그로부터 시작된 대형 마트의 들어섬. 뚝딱뚝딱 짓기 무섭게 거대한 규모로 우리를 집어삼키기 바빴던 매장에서 동생과 시급을 받고 시음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내가 있었다.
카트 안에 세제며 맥주를 박스째 쌓고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주스 한 병이라도 더 팔아보고자 목청을 높이다 보면 온갖 먼지에 눈은 충혈 되고, 찰나의 휴식에 다리는 퉁퉁 붓고, 계산이 안 맞으면 밀려드는 자괴감에 돈의 비위가 더 상하고는 했다. 그래도 어쩌랴, 벌어야 사는 걸. 북적거림을 피해 자정 넘어 마트를 찾을 때마다 나는 계산대에 서 있는 우리네 엄마들, 물건을 나르고 진열하는 우리네 동생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들의 눈이 왜 빨간지, 그들의 종아리에 왜 알이 배었는지, 그들이 점장한테 왜 군소리를 듣는지 바로 알아버리는 까닭이었다. 대형 마트 영업시간 제한 및 강제 휴무 조치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들리는 소리라니, 중소상인들 보호할 맘이었다면 애초에 공룡 마트들 허가나 말지 왜 이제 와 뒷북들을 치실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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