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국회의장이 9일 2008년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의장직을 전격 사퇴함에 따라 정국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현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여당으로선 이번 사태의 충격파가 작지 않아 보인다. 이날 의원총회장에 모인 여당 의원들의 얼굴에선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낭패감이 잔뜩 묻어났다.
더구나 이번 사건에 연루돼 있는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조만간 진퇴 여부를 밝힐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 출신 국회의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여권 수뇌부가 얽힌 사건의 구조상 돈 봉투 의혹은 처음부터 상당한 폭발력을 안고 있었다. 만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말 맞추기와 거짓말로 일관한 정황까지 밝혀진다면 여권 전체의 도덕성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또 검찰이 전당대회 자금의 출처를 캐고 들어가거나 당시 봉투를 받은 다른 의원들을 수사 선상에 올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국에 미칠 파장은 예측불허가 된다. 박 의장이 이날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박 의장의 바람일 뿐이다.
여권은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졌다. 특히 당헌ㆍ당규와 당명까지 바꾸며 전방위 쇄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새누리당으로선 이번 사건으로 그간의 쇄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62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 상황이 좋지 않은 수도권 의원들에게는 이번 사안이 직격탄이 될 수 있어 더욱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야권이 총선기간 내내 이번 사건을 물고 늘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박 의장과 김 수석이 그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사태를 키웠다"며 "망신당할 것은 다 당하고 결국 당에 큰 부담을 떠넘겼다"고 질타했다. 한 당직자는 "민심이반으로 안 그래도 총선 상황이 어려운데 이번 사건으로 민심이 더욱 흉흉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참에 이명박 정부와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수도권 의원은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털 것은 확실히 털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중진 의원은 "한 달여를 끌어온 사안이기 때문에 여론의 비난이 생각 만큼 크지는 않을 것 같다"며 "이번 기회를 오히려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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