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비상대책위가 9일 '일감 몰아주기''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억제하는 내용의 대기업 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이 도입을 검토했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대기업집단 기본법 제정 등은 빠져 "재벌 개혁 의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전날 정책 쇄신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은 이날도 정책 브리핑 참석을 거부하는 등 이틀째 어깃장을 놓았다.
새누리당이 이날 발표한 대기업 정책은 그간 논란을 빚어온 재벌 문제 중 주로 불공정거래 부분에만 초점을 맞췄다. 부당한 단가 인하에 징벌적 손해 배상제도를 도입하고 중대한 담합 행위에는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 눈에 띄는 조치다. 또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요건 중 '현저성' 조항을 삭제키로 해 위법성 입증을 용이하게 했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당초부터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에 반대해온 데다 당내 일부에서 검토했던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포기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문어발 확장을 막기 위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문화하는 대기업집단 기본법 도입도 이번 대책에서 제외했다.
새누리당이 이날 대기업의 무분별한 중소기업 영역 진출을 억제하는 방안을 일부 내놓았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갖는 기업결합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규정에서 현행 5%를 1%로 하향 조정한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이에 대해 "해당 조항이 모호해 대기업이 빠져 나갈 구멍이 많다"며 "공정거래법으로 대기업의 중소기업 시장 진출을 막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재벌 빵집'으로 대표되는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 문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의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지만,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골목상권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 보고도 못하고 있다"며 회의 도중 나갔던 김종인 비대위원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 참석하기는 했으나 회의 직후 정책위의장과 함께 하기로 한 대기업 정책 브리핑에는 불참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자리를 뜨는 김 위원을 뒤쫓아와 "배경 설명을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설득했으나, 김 위원은 "혼자 하시라"며 거절했다.
김 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늘 발표한 정책은 공정거래법을 일부 손질한 정도로, 대기업 정책이라고 보기에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지금 국회 주변에 기업 쪽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정책쇄신분과회의를 주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김 위원은 10일 예정된 정책쇄신분과 회의에는 "참석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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