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문제가 4∙11 총선 정국의 핵심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한미 FTA 폐기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에게 FTA 발효 정지와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과거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민주통합당의 자기 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정책통 의원들과 인터뷰를 갖고 그들의 주장을 들었다.
■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
"참여정부 협상에선 車 분야 이익, 이익의 균형 깨진 지금과는 달라"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폐기 추진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의 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폐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의 목표는 재협상이지 한미 FTA의 전면 폐기에 있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어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 등 민주통합당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10개 항목 가운데 9개가 참여정부에서 확정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에서는 자동차 분야에서 이익이 됐기 때문에 ISD 조항 등을 감내하고 이익의 균형을 유지한 채 협정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_민주통합당의 최종 목표는 한미 FTA 폐기인가.
"재협상을 통해 이익의 균형을 갖춘 상생의 FTA를 만들어내자는 게 민주통합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재협상을 통한 좋은 FTA의 길이 막힐 경우 폐기도 불사할 수 있다. 폐기는 마지막 카드이다. 발효되더라도 총선 이후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미국 정부나 의회에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다. 나아가 집권까지 하게 되면 미국 정부에 양국간 균형이 유지되는 FTA 체결을 촉구할 것이다."
_조약 폐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한미 FTA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날치기로 단독 처리한 것이다. 재협상이 가능하려면 우리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미국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양국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다면 우리 국민의 우려를 잘 알 것이다. 정부가 진정한 의지를 갖고 요구하면 미국도 응할 것으로 본다."
_민주당이 재협상 요구한 10개 항목 가운데 대부분이 참여정부에서 합의된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이를 들어 '민주당의 자기 부정'이라고 비판하는데.
"참여정부에서는 이익의 균형이 유지가 됐다. 이번 정부 들어 밀실 재협상을 통해서 상당부분 양보하면서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 독소조항 등에 대해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또 현재 FTA가 발효되면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문제점도 있다."
_한미 FTA를 폐기할 경우 대미 수출이 타격을 입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FTA가 없을 때도 한미간 통상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한ㆍ유럽연합 FTA가 체결되면서 오히려 흑자 폭은 줄어들고 있다. FTA를 맺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FTA를 맺는 게 중요하다."
_새누리당은 FTA 폐기를 추진하면 한미동맹이 훼손된다고 지적하는데.
"FTA 협정에는 폐기 규정이 있다. 어떤 일방이 FTA를 폐기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6개월 후에 자동적으로 폐기하도록 돼 있다. 자기 나라에 매우 불리한 FTA를 불리한 줄 알면서도 그대로 가는 것이 도리어 문제이다."
_한미 FTA가 차질을 빚으면 한일 FTA, 한중 FTA 협상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한중 FTA는 한미 FTA와 관계 없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 정부에서 서둘러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차기 정부가 양국간 통상에 미치는 영향, 사회 양극화에 미치는 영향 등 국익 문제 전반을 심도 있게 검토해서 결정할 문제이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
"7년 걸친 국가간 협상 뒤집는건 국가 망신이자 노골적 선거전략"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은 9일 민주통합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에 대해 "4월 총선에서 한미 FTA 피해 분야 종사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노골적 선거 전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나 부의장은 이날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통과된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오만한 발상"이라며 "우리 국민들이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오만함을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의 한미 FTA 폐기 주장은 표를 얻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이지만 선거에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 부의장은 민주통합당이 한미 FTA 발효 정지와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내용의 서한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상ㆍ하원 의장에게 보낸 데 대해 "한마디로 국가적 망신이고 한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국가간 협약을 헌신짝 버리듯이 뒤집는다면 어느 나라가 한국과 조약을 맺으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통합당이 폐기를 주장하는 투자자ㆍ국가 소송제도(ISD)에 대해선 "ISD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를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그런 조항에 영향을 받을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이 한미 FTA 전면재검토를 요청하는 내용의 서한을 미국대사관에 전달했는데.
"지난 7년 동안 여야가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거쳐 힘들게 맺은 국가간 협상을 뒤집는 것은 신뢰를 해치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과 조약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한미 FTA를 발효하기 전에 ISD 등 10개 조항을 재협상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인데.
"민주통합당이 재협상을 요구한 10개 항목 중 9개는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체결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한 것은 자동차 세이프가드 조항 하나로 이 역시 해당 업계에서 받아들였다. 자동차 분야에서 양보하는 대신 의약품 유예기간과 돼지고기 관세 철폐 기간을 연장했다. 피해 분야에 대한 보상도 참여정부 때보다 훨씬 강화됐다."
-민주통합당이 왜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한다고 보는가.
"다분히 총선 표를 겨냥한 것이다. 농축산 등 한미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의 종사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이 같은 무책임한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미 FTA 발효가 늦춰질 가능성은 없는가.
"거의 없다고 본다. 여당과 행정부 모두 늦출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통합당의 폐기 주장에 대한 당 차원의 대책은 뭔가.
"국익을 위해 한미 FTA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피해 분야에 대해서도 최대한 지원한다는 내용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여당의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영입 움직임과 관련, 당내에서는 한미 FTA 반대 여론 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反) FTA 여론이 찬(贊) FTA 여론보다 더 많지는 않을 것이다. 김 전 본부장은 한ㆍ유럽연합(EU) FTA와 한미 FTA를 동시에 성공시킨 사람으로 그 능력을 높이 사야 한다."
신정훈 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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