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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나경원이냐 정봉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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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나경원이냐 정봉주냐

입력
2012.02.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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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의 귀재'라는 빅앤트인터내셔널 CEO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서원씨(33)는 <생각하는 미친 놈> 이라는 책을 냈다. 두산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그는 어려서부터 노는 데 미쳐 학교에서 꼴찌 수준이었지만, 부모는 "너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라"며 지켜보았다고 한다.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가서도 네 번이나 전공을 바꾸더니 30대에 디자인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그의 작품 중 이라크전쟁 종식을 호소하는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준 대로 받으리라)'포스터를 전신주에 감아 붙이면 적을 노리는 병사의 긴 총부리가 한 바퀴 돌아 그 자신의 뒤통수를 겨냥하게 돼 있다. 이 작품이 생각난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나경원법 대 정봉주법'대립이 바로 이렇게 남을 겨냥하고 공격하는 일이 실제로는 자신의 뒤통수를 노리는 총질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꼼수의 정봉주 전 의원이 BBK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된 이후, 민주통합당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더라도 비방 목적이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을 고치자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거짓인 줄 모르고 비방하면 처벌하지 말자는 취지다. 특히 '이 법 개정 전 종전 규정에 따라 확정 판결을 받은 자에 대하여는 형의 집행을 면제한다'고 부칙 경과규정을 붙여 법이 통과되면 정 전 의원은 형의 면제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른바 '정봉주법'이다.

민주통합당은 형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에 관한 법의 명예훼손죄 개정도 서두르고 있다. 헌법이 규정하는 선거의 공정성,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취지이다. .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공직선거에서 당선을 목적으로 본인이나 상대 후보 및 그의 가족에 대한 허위사실을 신문 방송 SNS를 포함한 인터넷을 통해 유포할 경우 벌금형 대신 징역형으로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연회비 1억원의 호화 피부관리실을 출입했다는 허위사실이 전파돼 선거에 영향을 미친 바 있고, SNS 선거운동이 전면 허용됨에 따라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흑색선전이 난무할 조짐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나경원법'이다.

이런 대립을 보면 자신들이 언제까지나 여당이거나 또는 만년 야당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 민주통합당이 자신하는 대로 이번에 정권교체를 이루면 여당으로 입장이 바뀌고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의 위험에 더 노출될 수 있는데도 지금 당장만 생각하고 있다. 법을 소급 적용하는 것도 무리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늘 당하는 입장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렇게 법을 고쳐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면 부메랑이 되어 새누리당에 돌아갈 것이다. SNS를 이용한 선거운동 규제의 근거인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는 게 대세이다. 벌금형 대신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무시하면 안 된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것도 이런 싸움의 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비방을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깎아 내리거나 헐뜯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자의적 해석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

표현의 자유가 확대됨에 따라 공직선거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증가할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여야가 정개특위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하고 후보자 비방죄 벌칙을 강화키로 한 것도 이유가 있다. 정개특위는 앞으로 이 문제를 더 깊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공익 목적의 후보자 검증이라는 선거의 특성을 감안하되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를 어떻게 처벌한 것인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야가 합의를 하지 못하면 지금 법으로 선거를 치르는 수밖에 없다. 정봉주법이나 나경원법은 모두 정답이 아닌 것 같다.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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