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차례 진통을 거듭하다 작년 말 무산된 것으로 보였던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특별법'이 총선이 다가오면서 되살아났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에서는 "금배지에 눈이 멀어 법 원칙까지 무시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강력 반발하는 모습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9일 오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현행법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 피해액의 55%를 보상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제 대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업정지 된 18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초과 예금자 및 후순위채 투자자 8만2,391명으로, 구제 규모는 1,025억원으로 추정된다.
아직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본회의(16일) 절차가 남아 있어 통과를 장담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새누리당 정무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으로 돈을 잃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국회가 외면할 수 없다는 데 여야 모두가 합의한 만큼,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국회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반응도 있지만, 형평성은 물론 예금자보호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지금처럼 원리금 5,000만원까지 보호하는 예금자보호제도는 2001년 도입돼 10년 넘게 유지돼 온 원칙이다. 더구나 후순위채에 대해선 '금융이용자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외환위기 때도 손실분을 메워주지 않았었다.
금융계 관계자는 "만일 특별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비슷한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생떼를 써도 정부가 똑같이 해줘야 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며 "5,000만원까지 예금보호한도를 설정한 법의 기본 취지를 무너뜨려 예금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피해자 구제 재원도 문제다. 정무위는 애초 정부 출연금과 저축은행 부실 책임자의 과태료, 과징금, 벌금 등을 투입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이를 제외한 채 예금보험기금으로 조성한 '저축은행 특별계정'에서 재원을 마련키로 의견을 모았다. 예보기금은 은행, 보험 등을 이용하는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조성한 민간재원이다.
결국 수많은 은행 예금자와 보험 가입자가 만일의 위험 발생에 대비해 쌓아 둔 예보기금을 당사자 동의 없이 멋대로 끌어다가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손실을 메워주는 셈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특별법은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사용한다는 취지를 무시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며 "불특정 다수의 사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법으로 위헌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금융권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중론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법안이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살아났는데 포퓰리즘이 아니고 뭐겠느냐"며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은 안타깝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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