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네가 꿈꾸는 것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네가 꿈꾸는 것은

입력
2012.02.09 11:57
0 0

이성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

바람은 달려가고

연인들은 헤어지고

빌딩은 자라난다

송아지는 태어나고

늙은 개는 숨을 거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찻잔에 물이 잔잔하고

네 앞에 시 한 편이 완성되어 있을 때

● 우리가 꿈꾸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입니다. 바람이 불고, 사랑이 끝나고, 탄생과 죽음이 이어지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 말고는 어떤 일도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사건, 사고로 너무 많이 피로해요. 사료값 때문에 송아지들을 전부 굶겨 죽여야 하고 비싼 약값에 어린 환자가 치료도 못 받아 앓고 있는 일. 그런 일들을 다반사로 만들 무역협정을 맺는 일. 언론인에게 제대로 보도할 권리를 빼앗아 버리는 일. 이런 부자연스러운 일들 없이도 시는 완성될 수 있어요. 사라진 바람에 대해서만, 사랑의 슬픔에 대해서만, 언어와 죽음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들로만 잔잔하게 시 쓸 수 있는 날들을 꿈꾸어 봅니다. 찻잔 속의 물처럼 고요한 삶, 그토록 간결한 시를.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