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골프장엔 1.5%…서민업종 숙박업·미용실엔 2.9%
신용카드 수수료를 둘러싼 카드사와 상인들 간 전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1999년부터 줄곧 제기돼 온 이슈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잠식 등 사회통합을 저해할 정도로 심각해진 경제력 집중이 우리 사회 최대 논란이 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다. 10년 넘게 끌어온 수수료 갈등이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8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골프장과 주유소, 백화점 등 대형사 가맹점의 최저 수수료율은 1.5%에 불과한 반면, 서민업종에 해당하는 숙박업과 미용실은 2.9%로 두 배나 차이 난다.
특히 대기업 계열 카드사들은 노골적으로 제 식구나 대형사에 수수료 특혜를 주고 있다. 롯데카드는 한국표준산업분류 기준 45개 업종 가운데 23개에서 수수료 상위 1, 2위를 다툰다. 대다수 업종에 고율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계열사인 롯데마트에는 최저 수준인 1.7%를 적용 중이다. 또 현대카드는 현대자동차에 1.7%의 수수료율을 매기고 있고, 삼성카드는 한때 제휴사였던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에 불과 0.7%만 적용한다.
영세 상인들의 분노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오호석 유권자시민행동 상임대표는 "카드사들이 지난달부터 연 매출 2억원 미만 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을 2.0%대에서 1.8%로 낮췄다고 생색을 내지만, 계열사나 대기업에는 훨씬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다"며 "업종 간 차별 없이 1.5%를 일률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대형사는 결제금액이 크고, 제휴 서비스도 함께 개발하는 파트너이므로 수수료율 혜택을 주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되는 수수료 원가를 내놓지 않고 있어 명분이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원가분석의 경우 회사 내부 회계에 해당하고 카드사마다 수수료율 책정 기준도 달라 공개를 강요할 수는 없다"며 카드사들을 두둔하는 입장이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원가 공개 대신 가맹점들의 처지를 반영한 보다 현실적인 수수료 체계 개편안을 다음달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이에 따른 수익 감소가 애꿎은 서민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카드사들이 지난해 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소폭 낮추면서 이미 부가서비스를 축소, 폐지하지 않았느냐"며 "수익 보전을 위해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수수료율을 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두형 여신금융협회장도 이날 간담회에서 "카드 회원들은 그간 수수료에 대한 분담 없이 혜택만 받아왔기 때문에 부가서비스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카드사들을 거들었다. 서민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로 서민 가맹점을 살리겠다는 얘기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 영세상인들 "처벌 각오하고 카드결제 거부" 압박 수위 높여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골목상권의 영세 상인들은 물론 정치권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8일 법안심사 소위를 열고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업종과 상관없이 1.5% 전후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앞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2월 임시국회에서 카드 수수료율을 1.5%로 일괄 인하하는 개정안을 통과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개정안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체크카드 등 직불형카드의 소득공제 한도를 현행 3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확대하고, 신용카드 공제 한도는 3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영세 상인들이 소속된 시민단체는 20일부터 업계 1위인 신한카드 결제 거부 운동에 나서는 등 카드사들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유권자시민행동과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측은 "신한카드 결제만 거부하는 방식으로 실력행사에 나설 것이고, 이에 따른 형사 처벌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는 가맹점이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면 합법적으로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지만,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만큼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앞서 지난해 11월 자영업 단체인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는 이 법 조항이 카드사에 지나친 우월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연합회는 또 "계열사나 대형사에는 1%대 낮은 수수료율을 책정하면서 영세 가맹점에는 3% 넘는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며 15일부터 대기업 계열 카드사인 삼성, 현대, 롯데카드 해지 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 수수료 인하 압박… 경쟁 갈수록 격화… 카드사 '진퇴양난'
요즘 신용카드사들은 하나같이 울상이다.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수수료 인하 압박은 날로 그 강도를 더해가고, 세간의 이미지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서 고액의 수수료나 챙기는 부도덕한 존재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실제 카드사 간 경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에서 독립한 KB국민카드는 지난해 1~9월 중 회원모집 비용으로만 1,620억원을 쏟아 부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KB국민카드가 분사되면서 카드 시장의 경쟁이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산업은행과 우체국이 올해 체크카드 시장에 새로 진출했고,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의 합병에 따른 대형 카드사의 등장 가능성도 높아졌다.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은 악화하는데 경쟁은 더 치열해지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태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법. 카드사마다 새로운 수익원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특히 모바일 사업과 체크카드 강화에 승부를 거는 곳이 많다.
신한카드는 올해 초 모바일 사업팀을 신설해 모바일 특화카드인 'Tap카드'를 선보였고, 삼성카드도 모바일 쿠폰이 포함된 어플리케이션'모바일전자지갑'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나SK카드와 KB국민카드는 수익성이 떨어져 그간 외면했지만,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고 정부가 적극 장려하는 체크카드 분야에 좀 더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각계의 수수료 인하 압박에도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카드사들의 이익단체인 여신금융협회 이두형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형 가맹점들이 고통 분담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여신금융협회가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연구원 등에 적정 수수료에 관한 연구를 맡겨 놓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향후 수수료체계 개편 방향과 관련해 주목된다. 카드사들도 그간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협회 차원에서 적정 수수료를 연구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수수료 인하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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