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여부가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8일 공식적으로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여야 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사실 민주통합당의 강경한 입장 표명은 예고된 것이었다. 1ㆍ15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명숙 대표를 비롯한 9명의 출마자 모두가 전면적인 재협상 내지는 폐기를 주장했다. "발효 이전에 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수정하지 않으면 19대 국회와 정권교체를 통해 폐기시키겠다"는 한 대표의 발언은 현 지도부가 당원과 국민에게 공언한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한미 FTA를 참여정부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 과정에서 이익균형이 심각하게 깨졌기 때문에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은 자동차 산업에서 양보하는 척하면서 농축산 품목과 여타 공산품 분야에서 과도한 이득을 챙겼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강경한 입장은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둔 측면이 강하다. 복지 정책이나 재벌개혁 방안에서는 차별성과 함께 공통점도 드러나지만, 한미 FTA 비준안의 경우는 찬반 입장이 명확히 갈린다. 이를 통해 지지층 결속도 도모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엔 속도를 내서 야권연대를 추진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총선이 6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연대 논의를 시작하지 못한 가운데 이날 한미 FTA 발표 절차 중단과 재협상 촉구 집회를 통합진보당과 함께 개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한미 FTA는 민주통합당이 계승한다는 노무현 정부가 기획하고 협상하고 타결한 사안"이라며 "이제 와서 표를 의식해 말을 바꿔 자신들이 집권했던 시절의 정책까지 부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세력임을 자인하면서 신뢰 상실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민주통합당의 주장대로 한미 FTA 비준안을 폐기할 경우 국가신인도가 추락하고 한미동맹의 핵심축이 무너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한미 FTA 비준안이 예정대로 2월에 발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미 FTA 협상 타결의 주역인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영입하기로 한 것도 한미 FTA 발효 등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야 모두 상황에 따라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꿨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크다. 민주통합당 한 대표는 총리 시절 한미 FTA 협상을 주도했던 당사자다. 지난해 국회 단독 처리를 이끌었던 홍준표 전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대표가 과거 참여정부의 협상 당시에는 비판론의 선봉에 섰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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