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신간이나 베스트셀러의 전자책 유통을 주저했던 출판사들이 전자책 제작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올해는 국내 전자책 시장이 질적으로 도약하는 해가 될 겁니다."
국내 주요 단행본 출판사들이 전자책 출판 시스템 구축 및 유통 관리를 위해 만든 한국출판콘텐츠(e-kpc)의 신경렬 대표(더난콘텐츠그룹 대표)는 8일 열린 '전자책 출시 본격화 선언'행사의 의의를 이렇게 말했다. e-kpc는 온ㆍ오프라인 대형서점이나 통신업체 등 유통사들이 주도해 온 전자책 제작ㆍ유통을 실제 콘텐츠를 만드는 출판사들이 앞서서 이끌자는 취지로 2009년 설립됐다. 이날 행사는 그 동안의 사업 성과를 설명하고 유통사들과 협력을 구하는 자리였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을 필두로 급성장하는 미국만은 못하지만 국내에도 전자책 시장이 기지개는 편 상태인데 갑자기 웬 '전자책 본격화 선언'인가 싶다. 신 대표는 "현재 유통되는 단행본 전자책 콘텐츠는 10만 종 정도인데 내용을 가만히 살펴 보면 허접하기 짝이 없고 일부는 저작권 계약도 없이 유통되는 경우도 있다"며 "신간, 베스트셀러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은 그 이유가 유통업체들이 전자책 제작과 유통을 주도해온 데 있다고 본다. 현재 대부분의 전자책은 출판사가 종이책 파일을 유통업체에 넘겨 제작되는데, 출판계는 이 과정에서 파일의 불법 유출 위험이나 전자책 소유권의 유통업체 귀속에 따른 불이익, 콘텐츠의 변형으로 인한 출판물의 질 훼손 가능성 등을 우려해왔다.
단행본 출판사를 중심으로 70여개 주주사와 250곳의 제휴사로 구성된 e-kpc는 전자책 시장에서 출판사들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교두보인 셈이다. 전자책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출판인회의가 2010년 만든 공용 디지털저작관리(DRM)의 관리를 맡았고,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전자책 변환 솔루션과 서체 보급까지 마쳤다.
신 대표는 "유통업체나 통신사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널리 보급한다는 관점보다는 유통이나 통신 이용을 통한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기 마련"이라며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면 출판사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자금력이 있는 통신사가 100억원을 투입해 이른바 잘 나가는 작가 10명 정도를 잡아서 전자책을 공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다양한 출판문화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그는 "e-kpc에 참여한 창비, 김영사, 문학동네, 세계사, 해냄, 푸른숲, 사계절, 휴머니스트, 돌베개 등의 신간, 베스트셀러 전자책 출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이 전자책 유통을 주도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전자책의 가격 하락 압박을 막기 위해서다. 아마존의 경우 전자책 가격이 대부분 9.99달러 이하이고 1달러에 못 미치는 책도 있다. 유통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독자들의 요구가 계속되면 출판 콘텐츠의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래서는 출판산업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마저 출판계는 갖고 있다.
신 대표는 "가격 결정은 책의 종류나, 출판사의 경영 판단에 궁극적으로 달린 것이지만 전자책의 가격을 종이책의 60~70%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1,000원, 2,000원으로 값이 떨어져 유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필요한 책을 적정한 값을 주고 읽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