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나꼼수' 김어준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베페 그릴로(63)가 있다. 자국 총리를 '사이코 난쟁이'라고 비꼬는 정치 풍자 코미디언이다. 김어준의 인기가 '가카의 꼼수'와 비례하듯, 그릴로의 영향력 역시 이탈리아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의 실정과 비례해 커졌다.
1986년 코미디쇼 '그릴로 메트로'를 통해 스타가 된 그릴로는 이듬해 크락시 총리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됐고, 93년 두 번째 방송출연 금지를 당한 후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연을 통해서만 대중과 만나고 있다. 정치권에 거침없는 독설과 조롱을 퍼붓는 그의 인기는 지난해 11월 베를루스코니의 사임 이후에도 식지 않아, 여전히 한 달 평균 650만명이 그의 블로그를 찾는다.
그릴로의 까칠한 정치의식을 담은 책 <진실을 말하는 광대> (호미하우스 발행)가 다음주 국내 출간된다. 그는 출간에 앞서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활약'이 베를루스코니의 퇴임에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를 퇴임시킨 것은 유럽연합과 유럽연합은행이지 이탈리아 국민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베를루스코니가 온갖 구설수에 오르면서도 장기 집권할 수 있던 이유로 '방송사 장악 시도와 언론 통제'를 꼽으며 "대중은 통제되고 만들어진 정보만을 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탈리아에는 이미 당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놈이 그 놈일 뿐이며, (정치나 정책은)그들끼리 짜고 치는 게임일 뿐이다"고 꼬집었다. 진실을>
그릴로는 '금융과 기업은 서로 근친상간이다' '국가사회보험청(INPS)은 누구도 돈을 내려 하지 않는 늙은 매춘부 같다' 등 날 선 독설로 '정치선동가'로 불리기도 한다. 신간 역시 이런 풍자와 독설로 가득 차 있다. '선동가'란 비판에 대해 그는 "오래 전부터 정당과 주류언론이 중심이 돼 나를 비방하는 캠페인이 있었다. 간디 역시 그런 일을 겪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하며 "그들이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영향력을 갖는 것은 직접 정치 운동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2007년 자신의 블로그에서 '깨끗한 국회 만들기' 운동을 시작해 그 해 9월 200만명이 모인 정치 집회 'V-Day'(빌어먹을 날이란 뜻의 Vaffa-Day의 약자)를 주도했다. 신간은 V-Day 집회 내용을 비롯해 정치, 기업, 노동자, 언론, 환경, 국제 연대에 관한 그의 견해를 담고 있다. 책에서 '좌파나 우파는 모두 똑같은 놈들'이라고 꼬집은 그는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의 문제"라며 "얼마 전부터 인터넷과 SNS를 통해 시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파이브스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것이 기존 정당 정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정치 풍자의 영향이나 한계 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가볍게 떠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내 코미디의 핵심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정치적이다. 단, 정치풍자를 하는 이들은 순수함을 지키고, 스스로를 타락시키지 않으며,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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