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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서봉氏의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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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서봉氏의 가방

입력
2012.02.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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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서봉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을 넣어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거리는

더 커다란 가방을 사주거나

사물을 차곡차곡 접어 넣는 인내를 가르쳤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기억은 집을 놓치고

어느 날, 가방을 뒤집어보면

낡은 공허가 쏟아져, 서봉氏는 잔돌처럼 쓸쓸해졌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령 흐르는 물이나 한 떼의 구름 따위,

망상에 가득 찬 머리통을 담을 수 있는, 그러니까

서봉氏와 서봉氏의 바깥으로 규정된 실체를

통째로 넣고 다닐 만한 가방을 사러 다녔지만

노을 밑에 진열된 햇살은 너무 구체적이고

한정된 연민을 담아 팔고 있었다.

넣을 수 없는 것을 휴대하려는 관념과

이미 오래 전에 분실된 시간

거기, 서봉氏의 쓸쓸한 가죽 가방이 있다.

오래 노출된 서봉氏는 풍화되거나 낡아가기 쉬워서

바람이나 빗속에선 늘 비린 살내가 풍겼다.

무겁고 질긴 관념을 담고 다니느라

서봉氏의 몸은 자주 아프고

반쯤 벌어진 입은 늘 소문을 향해 슬프게 열려 있다.

● "누구와 사귀고 있는지 말한다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겠어." 괴테의 말입니다. 저는 조금 쉽게 갈래요. "너의 가방 속을 보여준다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어." 가방 속을 보면 당신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어요. 당신이 즐겨 쓰는 필기도구, 휴대용품의 종류로. 읽고 있는 책과 펼치면 그 안에 그어진 밑줄들로. 온갖 내밀한 것들을 내게 보여주세요. 그런데 가방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넣고 싶어 하는 서봉氏를 어찌해야 좋을까요. 넣을 수 없어 쏟아서 보여줄 수도 없는 것들을 우리도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당신의 가방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당신의 알 수 없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이런 독백은 너무 어리석은가요? 가방 바깥쪽의 로고 무늬만 보아도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들 하는 세상인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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