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는데 정은 많은 터라 간혹 손해를 보는 게 나다. 어쩌겠는가. 그래야 내가 편한걸. 무턱대고 내 고집을 자신하다 뒤통수 맞은 적도 여럿이다. 맞다, 나는 혼이 나야 한다. 의심의 눈초리를 회심의 회초리로 후려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너 말고 내 종아리 시퍼렇게 멍든 적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돈에 있어 그렇다. 잊을 만하면 나는 한 번씩 애먼 돈이 어디 없나 안 쓰는 통장을 조회해보곤 한다. 큰돈 아닌 푼돈이라도 내 지갑에서 가져갔으면 다시 넣어주는 게 예의일 텐데 그렇게 빠져나간 돈은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테니스 레슨을 받을 때 코치를 했던 변군은 기억이나 할까.
공예과에 다니던 동생의 눈에 철심이 박히는 사고가 났다 했지.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 50만원이 모자란다고 했지. 가불은커녕 병원에 갈 택시비도 없다 했지. 아버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앞을 못 보신다 했지. "누나, 저 돈 좀 꿔주시면 안 돼요?"
0.1톤의 변군이 울지만 않았어도, 그날 내 통장에 '박인환문학상' 상금만 들어오지 않았어도 나는 거지야, 보무도 당당하게 두 손 탈탈 털어 보였으련만. 그로부터 5년, 그사이 변군에게 딱 한 번 전화를 걸었더랬다. "누나, 내가 누굴 손 좀 봤다가 어딜 좀 들어갔다 왔어요. 잘 지냈죠?" 나는 휴대폰에 저장된 변군의 번호를 바로 날름 지웠다. 그러니까 잘 지내기 위해.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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