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이더 긴스버그(79) 미국 연방대법관이 미 헌법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이 더 훌륭하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대법관의 헌법 비하 발언이란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전세계 법치체계에서 미국 헌법의 영향력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고 보도, 결과적으로 긴스버그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긴스버그는 최근 이집트 알하야트TV 인터뷰에서 "내가 2012년에 헌법을 기초한다면 남아공 헌법을 참고하겠다"며 "미국 헌법은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가 어떤 헌법을 모델로 삼아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미국 헌법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헌법들을 참고하라"고 했다. 긴스버그는 "기본 인권을 보장하는 남아공 헌법은 위대한 법"이라며 "미국 헌법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한 긴스버그는 9명의 미국 대법관 중 진보파로 분류된다. 그는 미국 헌법과 이를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들을 거론하며 "(1787년) 필라델피아에 모여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 매우 슬기로웠던 건 미국의 행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건국의 아버지들은 여성에 관련된 조문을 빠뜨렸다"며 헌법 제정 때 노예제도가 인정된 문제점을 지적했다.
데이비드 로 워싱턴대 교수와 밀라 베스티그 버지니아대 교수는 6일 "미국 헌법은 1960~70년대 세계 각지에서 제정된 민주 헌법에 영향을 끼쳤지만 1980년대부터 반대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NYT에 주장했다. 두 교수는 1946년부터 2006년 사이에 세계 188개국에서 제정된 729건의 헌법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미국 헌법의 영향력은 2차 대전 종전 무렵보다 낮다.
전문가들은 미국 헌법이 제정된 지 오래되고 다른 나라에 비해 개정이 쉽지 않으며 무기 소지를 허용하는 등 지나치게 특수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보수진영은 긴스버그를 좌파 대법관으로 몰아 세우며 비난했다. 그의 발언을 계기로 미국 법관들이 다른 나라의 법률을 참조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도 도마에 올랐다.
97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정책) 종식 이후 만들어진 남아공 헌법은 사회ㆍ경제적 권리를 폭 넓게 규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법대 교수도 "남아공 헌법이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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