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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칼럼] '오랑캐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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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칼럼] '오랑캐들의 합창'

입력
2012.02.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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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헌법(1982)을 공포된 직후에 읽었다. 한 조문이 오래 눈길을 붙들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각 민족은 모두 평등하다. 국가는 각 소수 민족의 합법적 권리 및 이익을 보장하며 각 민족의 평등, 단결, 상호 원조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킨다. 어떤 민족에 대해서도 차별 및 억압을 금지하며 민족의 단결을 파괴하거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금지한다.'(제4조) 이어서 반혁명적, 반사회적 행위를 엄단하고(28조) 모든 인민에게 조국을 방어하고 외침에 저항할 의무를 명시한 조항(55조)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다. 섬뜩했다. 이들 평등조항과 체제방어조항이야말로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으로 시작하여 반봉건, 인민혁명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전문(前文)보다 더욱 강한 중화의 냄새를 풍긴다. 헌법 제4조는 소수자의 인권보장이 아니라 다수자의 노골적인 협박이다. '민족의 단결을 파괴하거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 그것은 바로 중화의 신성불가침을 넘보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다.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56개 오랑캐족을 품속에 거느린 천자의 나라다. 제국이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든 변함없이 우주의 중심이다. 소수민족의 권리보장이란 장성 안에 오랑캐의 놀이터를 마련해 준다는 공치사일 뿐이다. 수틀리면 언제라도 탱크를 들이대겠다. 외국도 오랑캐에 불과하다. 국제사회가 거론하는 중국의 인권문제도 장성 밖 만족(蠻族)들의 푸념에 불과하다. 티베트도, 신창도, 천안문도, 동북공정도 모두 중화신의 통치술이다. 안하무인, 후안무치, 오만극치, 대국의 횡포다.

헌법이 공포된 지 40돌, 중국은 더욱 무서운 나라가 되었다. 아프리카 구석구석에도 중국의 돈줄이 뻗어있다, 벼락출세한 졸부의 거드름이 번들거린다. 우리가 열광하는 이른바 '한류'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당초 일본문화의 유입에 대한 경계심으로 얻은 반사적 이익에 불과했다. 절정에 이른 K 팝 열풍의 실체는 그들의 심리 속에 오래토록 뿌리박은 중화의 여유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가무를 즐기던, 결코 적수가 될 수 없는 오랑캐의 재롱을 즐기는 대국인의 관대함이다. 대국이 민족을 내세우면 온 세상에 재앙이 온다. 국경을 접한 14개 나라 모두 중국에 대한 위구심에 안절부절이다. 연전에 만난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아시아의 서쪽 끝이 아니라 유럽의 동쪽 끝임을 강조했다.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몽고 모두가 중국 눈치에 벌벌 뜬다. 이따금씩 인도 정도가 맞장 떠주기를 바란다. 1975년부터 4년간, 세계를 공포의 경악으로 몰아넣었던 '킬링필드'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을 지지했던 중국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인도차니아 반도국의 연대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근래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은 중국의 후견 아래로 들어갔다. 남북통일과 우리민족이란 거룩한 단어가 공허한 메아리가 될까봐 조바심이 난다. 때늦었지만 어떻게 중국을 대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심해야 한다. 중국 인접국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편협한 고래의 역사관이 전승되고 있다.

대국에 대해서는 사대를, 소국에 대해서는 멸시를 장기로 아는 '소중화(小中華)'의 관념이 남아 있다. 중국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지면서 인접국가들에 대해서는 가당찮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한시 바삐 벗어 던져야 한다. 그리고 큰 틀에서 대 중국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도처에 우군을 만들어야 한다. 장사도 목전의 이익만 챙겨서는 더욱 많은 것을 잃는다. 서푼 짜리의 원조로 받는 나라의 문화적 자존심을 건드리면 만사휴의다. 중국을 택하면서 매정하게 버렸던 타이완에 대해서도 각별한 애정을 되살려야 한다. 사회발전의 수준을 보아도 우리와 가장 처지가 비슷한 나라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앞서 '오랑캐들의 합창'과 같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분명히 어디에선가 하고 있을 터이지만 선뜻 보이지 않아서 던지는 말이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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