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독 작곡가 진은숙씨와 나눈 긴 통화는 직접적으로는 지난달 30일 그가 베를린에서 서울시향에 팩스로 보내온 장문의 글에서 비롯됐다. 근본적으로는 석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서울시향 예술감독 정명훈씨에 대한 특혜 여부를 둘러싼 일련의 공방이 배경이다.
특혜 공방에는 본질적으로 "세계 10대 오케스트라"라는 정부측의 성과주의식 태도가 시향과 부정교합을 빚고 있다는 의구심이 존재한다. 이번 논란은 작가 겸 연출가 김상수씨가 지난해 11월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등의 칼럼과 인터뷰를 통해 "정씨에 지급되는 과다 연봉이 기득권의 성과주의와 맞물려 예술을 '형해화(形骸化)'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촉발됐다. 우리 예술이 앙상하게 뼈다귀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인 진씨는 지난달 30일 언론 공개를 전제로 시향에 글을 보냈다. "한글로 글쓰기는 29년 만에 처음"이라는 그는 A4 용지 34쪽을 육필로 메운 글에서 "지휘자 정명훈에 대한 비난과 서울시향의 음악적 성과에 대한 폄하는 나를 향한 화살"이라면서 "이번 논란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밝혔다.
진씨는 "7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서울시향과 정명훈은 예술적 성과를 통해 국제적 무대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2010년 서울시향의 베를린 연주 당시 장사진을 친 관객들로부터 받은 찬사는 "유럽 생활 25년 만에 처음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해 준 사건이었으며, 서울시향의 도이치그라모폰과의 음반 발매 계약 체결은 "자랑거리"였다고 썼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대로, 그는 "음악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고 까칠"하다고 자신을 그렸다. 그래서 "정명훈 같은 지휘자가 한국에 없었다면 지금까지 서울시향을 통해 이어져 오고 있는 음악적 성과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그의 평은 적잖은 울림을 갖는다. 나아가 "서울시향과의 동행은 엄청난 행운"이라는 소회를 달았다.
진씨는 전화통화에서 "글의 효과나 파장이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 나를 위한 정리의 차원이었다"며 "(이번 논란으로)두 달 간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고 불면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그는 "(글을 쓰기 전)서울시향과의 협의는 전혀 없었다"며 "개인을 폄하하는 글을 언론에서 아무 검증 없이 내보내 벌어진 파장"이라고 했다. 그가 보는 사태의 출발점인 셈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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