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불 내린다아!”
고개를 쳐들어 밤하늘을 보던 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타닥타닥 튀는 소리와 함께 빨간 불티가 꽃처럼 떨어져 내렸다. 낙화다. 세찬 비에 꽃 지듯 우수수 쏟아지는 불티 덩어리는 탐스러운 꼬리를 흔들었다. 점점이 흩날리며 천천히 춤추듯 떨어지는 불티는 어둠을 배경으로 우아한 선을 그렸다. 화약을 써서 요란하게 펑펑 터지는 서양식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오랫동안 펼쳐지는 아름다운 쇼, 충북 청원군 부용면 등곡1리에 내려오는 정월대보름 낙화놀이다.
정월대보름인 6일 저녁 충북 청주 예술의전당 마당에서 낙화놀이가 벌어졌다. 길이 100m의 긴 새끼줄이 주차장 자리 허공 6m에 걸렸다. 두 대의 크레인이 양 끝을 잡았다. 새끼줄에는 수세미 모양의 낙화봉 158개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충북 도민 158만명을 상징하는 숫자다. 낙화봉은 광목 천에 목화솜을 깔고 뽕나무 숯가루와 굵은 소금을 넣어 돌돌 만 다음 짚으로 여러 번 매듭을 지어 꽁꽁 묶은 것이다. 오후 7시 10분, 횃불을 든 등곡마을 주민들이 낙화봉에 불을 댕겼다. 10분쯤 지났을까. 낙화봉이 타들어 가면서 첫 번째 마디가 툭 터지자 숯가루와 한데 넣은 소금이 탁탁 튀면서 불이 내렸다. 마디가 하나씩 터질 때마다 불꽃이 쏟아지는데, 오래 가는 것은 다음날 아침까지 탄다고 한다.
이날 낙화놀이는 2012년 충북 민속문화의 해 선포식의 하이라이트로 마련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7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매년 각 지역을 돌아가면서 민속문화의 해를 정하는데, 올해는 충북 차례다. 한 해 동안 충북도와 함께 학술조사, 전시, 축제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충북의 민속을 알린다.
등곡마을은 현재 60가구 정도가 산다. 이 마을 낙화놀이는 1985년을 끝으로 중단됐다가 작년에 다시 시작됐다. 마을 역사가 한 300년 됐는데, 200년 이상 내려온 전통이라고 한다. 이게 끊어지면 안 되겠다 해서 청년들이 나서고 마을 어른들이 기억을 되살렸다.
축하공연을 곁들여 제법 뜨르르 하게 치른 선포식에 낙화놀이가 정점을 찍으니, 등곡마을 노인회장인 박헌복(79) 어르신은 신이 났다.
“이제 우리 마을이 우쭐할 거유. 저어기 어디선가 낙화놀이 하는 데가 두어 군데 있다던데, 근방에는 없시유. 무형문화재로 잽히면(정해지면) 앞으로는 더 크게 되는 거지.”
다른 마을 출신인 그는 “등곡마을에 낙화 내린다고 구경 왔다가 샥시(색시)를 만나서 달밤에 붙잡고 댕기다가 걸려서” 장가를 갔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전깃불이 안 들어오던 시절, 대보름날 밤새 떨어지는 낙화놀이 불꽃은 청춘남녀 스캔들에 스파크를 일으키기도 했을 것이다.
낙화놀이는 불꽃놀이다 보니 물가인 남한강과 금강 유역 마을에서 많이 했다고 한다. 충북에는 단양, 충주, 제천에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등곡마을만 남았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선유줄불놀이와 전북 무주군 안성면 두문마을의 낙화놀이가 있다. 양반들이 배를 타고 즐기던 선유줄불놀이는 매년 가을 안동에서 열리는 국제탈춤페스티벌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고, 무주 두문마을의 낙화놀이는 전승이 끊겼다가 2007년 150년 만에 재현돼 무주 반딧불축제의 하나가 됐다. 등곡마을 낙화놀이가 이들 지역과 다른 점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 행사라는 점이다.
등곡마을의 낙화놀이는 정월대보름 전날, 한 해의 액을 막고 마을의 풍요를 빌면서 한다. 등곡마을은 아랫말과 윗말로 이뤄져 있는데, 각각 줄을 걸어 어느 줄이 더 오래 멋있게 타는지 경쟁을 한다. 낙화봉은 남자들이 만드는데, 심신이 정갈한 사람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목욕재계하고 부부관계도 삼간다고 한다.
이번 행사를 위해 주민들은 보름 전부터 준비를 했다. 선포식장에서 낙화봉 만들기 시범을 보이던 주민 이동열(59)씨가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낙화봉에 넣는 숯은 뽕나무를 써유. 뽕나무가 제일 잘 타거든유. 작년엔 낙화봉을 20, 30개 정도 만들었는데, 올해는 선포식에 쓰려고 170개나 만드느라 뽕나무를 경운기 네 대 만큼 베어다 이틀간 태웠시유. 예전엔 숯을 돌구통(돌절구)에 넣고 빵궜는데(빻았는데), 이번엔 너무 많아서 뽀꾸리(포클레인)로 빵궜시유. 사람이 하려면 닷새도 모지라유. 근디 올해 마을이 잘 되려는지 뽕나무 벨 때부터 날씨가 좋았시유. 태우고 나니까 눈 오고, 빵구고 나니까 비 오고. 낙화놀이가 이번에 명(이름)이 많이 나야 하는디.”
등곡마을 주민들은 낙화놀이를 민속체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마을 살림에 보탬이 되도록 할 방도를 궁리 중이다. 마을에 남아 있는 중석광산의 폐광을 관광자원으로 살리고 호롱불 들고 가재 잡기 등 다른 프로그램도 넣어 재미나게 한번 만들어볼 계획이란다.
청주=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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