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따로 없다. 삐딱선을 탔는지 계속 심통을 부리는 자녀들 얘기다. 유행 브랜드의 '북극패딩'을 안 사준다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건 양반. 방학 내내 올라오는 잔소리를 꾹 참고 "너 진짜 머리 좋다", "아유 착하지" 등 달콤한 칭찬을 동원했지만 묻는 말엔 무조건 "됐어", "몰라도 돼"를 연발하는 통에 말 붙이기조차 조심스럽다. 숙제는 다 했는지, 공부는 잘 따라가고 있는지, 학교에서 괴롭히는 '일진'은 없는지 자녀에게 묻고 싶은 말이 태산 같지만, 잔소리 한다는 핀잔만 들을까봐 속앓이를 한다. 이런 부모들을 위해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서울대 심리학 석사, 미 시카고대 발달심리학 박사인 정 교수는 인지 및 정서 발달과 부모의 양육행동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EBS 다큐멘터리 '학교란 무엇인가 - 칭찬의 역효과'편에 출연해 '칭찬이 약'이라고 믿는 많은 부모들의 상식과 통념을 무너뜨렸다. <내 아이를 망치는 위험한 칭찬> , <아이를 크게 키우는 말 vs 아프게 하는> 을 펴내기도 했다. 인내심을 동원해 '착한 부모 필살기'를 발휘해봐도 영 신통치 않은 부모라면 다음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이를> 내>
칭찬보다 공감과 지지를
정 교수는 우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부추기는 칭찬보다는 '공감'을 표현하는 말로 자녀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극단적인 연구자들은 아예 칭찬 자체를 하지 말라고도 말하는데, 아이들이 '평가 받는 것에 길들여 지는 것'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너 수학문제 참 잘 풀었구나, 역시 머리가 좋아"라고 칭찬하는 것은 '만약 풀지 못했다면 머리가 나쁘다는 평가를 들었을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단지 한 두 문제를 더 풀게 하고, 지금 떼쓰는 행동을 잠시 멈추게 하는 데는 칭찬이 효과적일지 몰라도,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아이는 무조건 남의 평판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모든 행위의 동기를 호평받는 것에만 집중하는 태도와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 교수가 추천하는 대화법은 근거 없는 칭찬보다 공감하고 지지를 드러내는 것. 예를 들면, 악기 연주회나 발표회를 앞둔 자녀가 극도의 긴장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괜찮아 넌 잘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나쁜 예다. 무의식적으로 '잘못하면 비웃음을 받을지 몰라,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친구들보다는 잘해야 해'라는 메시지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 반면 "떨리는 게 당연한 거야. 아빠도 어렸을 때 남 앞에 서는 걸 얼마나 무서워했다고. 하지만 이건 네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야. 지금까지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무대도 즐겨보면 재미있지 않을까"하고 말하는 건 모범답안이다. 공감을 표현하면서도 비교와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본질적인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돕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에 인색한 부모가 좋은 부모는 아니다. ▦구체적 행위를 언급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심으로 ▦통제 가능한 영역에 대해 하는 칭찬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미술대회에서 상을 타다니, 참 잘했다. 실력을 타고났네"라고 말하기보다는 "여기에 보라색을 쓴 것은 참 좋은 아이디어다. 네 그림을 보고 감동 받았네. 앞으로도 재미있게 그려보자"고 말하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궁극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아이는 실패하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실패해도, 혹평 받아도 꿋꿋하게 딛고 일어설 줄 아는 아이"라며 "남과 비교하고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데 연연하지 않고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자기효능감을 키워줘야 실패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등이 정 교수가 말하는 대표적으로 자기효능감이 높은 경우다.
부모 말고 자녀 성격에 맞춰
또 자녀의 기본 성격과 기질에 맞춘 대화법을 구사하는 것 중요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반응 속도, 주의 집중능력, 외향성과 내향성 등이 천차만별이면 그에 따른 부모의 대화방식도 달라야 한다는 것. 정 교수는 "부모가 내뱉는 말은 일종의 칼이라 원석에 가까운 아이의 성격을 잘 조각해 낼 수도 있지만, 깨뜨려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적으로 유의해야 할 성향 4가지는 ▦행동과 사고 과정이 느린 아이 ▦까다로운 아이 ▦순한 아이 ▦산만한 아이 등이다. 이 성향을 부모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아예 대화의 단절과 거부가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이가 외부 환경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고 차분한 성향인데 매번 부모가 '빨리 해'라고 침입해 들어오면, 아이는 이 과정이 불쾌하다고 여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도 한다는 것. 어떤 아이들이 아예 부모가 자신에게 말을 걸려고만 해도 심한 짜증을 부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까다로운 아이에게 '왜 까다롭게 구냐'고 지적할 경우 자녀는 자신의 선택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부모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무조건 부모의 조언은 듣기 싫어하고 튕겨내고 더 별난 행동을 한다.
물론 늘 이론대로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정 교수는 "나도 성격이 급해 행동이 느린 제 중1 딸에게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며 "어느 날 제 책을 본 중1 딸이 '엄마 찔리지 않아?'하고 묻더라"며 웃었다. 그는"막상 아이 얼굴을 보면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게 되는 것이 부모이다 보니, 육아태도를 연구하는 저 자신도 늘 반성하고 고민해서 아이에게 한 마디 말을 붙이고 있다"며 "모든 문장을 고민해 말 할 순 없겠지만 '가급적 칭찬 대신 지지를 표한다', '재촉하지 않는다' 등 나름의 간단한 기준을 정해 늘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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