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고 있어요. 형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4일 오후 서울 중구 봉래동 2가 서울역파출소 앞. 이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장준기 경위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형님'으로 통한다. 그가 서울역을 순찰할 때면 역 주변에 있던 노숙인들이 장 경위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더러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노숙자가 없지 않으련만 '제복'에 대한 거부감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장 경위가 이 파출소에 발령 받은 것은 2000년 7월. 13년째 서울역 노숙인들을 혼자 관리하고 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만 해도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시민들이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 출퇴근을 못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 때부터 장 경위와 서울역 주변 노숙인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누가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나부터 그들을 돌보자 생각하며 노숙자 생활 살피기를 시작하게 됐다"며 "주위에서 힘들지 않냐고 묻기도 하지만 오히려 난 즐겁다"고 말했다.
이 파출소에서 서울역 노숙인 관리 업무는 그가 주로 책임졌다. 경찰은 2007년만 해도 노숙인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경찰관 8명으로 구성된 '노숙인 관리 TF팀'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그 해 여름 팀은 해체됐고 노숙인 관리는 다시 장 경위 몫으로 남게 됐다.
장 경위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노숙인 관리와 경찰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여러 동료들이 자진해서 내 일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노숙자 하나하나의 삶을 살펴보는 게 수월해졌다"면서도 "다른 곳에서도 노숙자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주면 힘이 나겠다"고 말했다.
장 경위가 보살펴온 서울역 노숙인만 해도 1,300여명. 현재는 150여명의 노숙인들이 서울역 근처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노숙자들과 늘 가까이서 인사하고, 대화하고,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일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숙인들의 가족연락처를 파악해 명절에 노숙인 대신 안부의 문자메시지를 띄워주곤 한다. 뜻 깊은 날 자그마한 위로라도 될 성 싶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법률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3년 전 평소 안면이 있던 노숙인 A씨가 국제결혼 사기를 당해 찾아왔다. 사기꾼이 중국관광을 시켜준다며 호적등본 등을 가져오게 한 뒤 국제결혼 서류로 이용한 것이다. 장 경위는 "얌전하고 온순한 노숙인은 사기 대상이 되기 십상"이라며 "대한무료법률구조공단에 A씨 사건을 의뢰, 혼인 무효소송을 내 구제를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역 주변을 순찰하는 동안 그는 많은 노숙인과 악수를 했지만 영하의 날씨에도 장갑을 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갑을 끼고 사람들(노숙인들)을 대하면 상대방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들이 서울역 주변을 떠나 온전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게 되면 나도 여기를 떠날 것"이라며 웃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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