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하게도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어느 순간 첩보물이라는 정체성을 잠시 잊게 된다. 장르적 특성에 어울리게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종국엔 큰 그림을 완성해 간다. 그 그림은 양질의 모와 면으로 만든 양탄자의 아름다운 수를 연상케 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유럽이 배경이다. 영국 비밀 정보부의 컨트롤(존 허트) 국장은 서커스라는 영국 정보국 안에 구 소련에 줄을 댄 이중간첩이 암약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헝가리로 요원을 보내 이중간첩의 정체를 캐내려던 비밀작전은 정보 누출로 인해 재앙으로 끝나고 만다. 컨트롤은 작전 실패로 불명예 퇴진하고, 은퇴한 전직 요원 조지(게리 올드만)가 이중간첩 색출을 위한 비밀 조사를 맡게 된다. 관련자들을 하나하나 몰래 만나고, 정보를 얻어가면서 조지는 자신이 극복하지 못한 정신적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이중간첩을 잡기 위해 첩보기관을 내사하는 늙은 전직 첩보원이라는 소재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첩보물이라고 하나 시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격렬한 몸싸움도 없고,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도 사양한다. 대신 인물들의 관계를 하나하나 이어가며 벽돌을 쌓듯 조금씩 서스펜스를 만들어가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자동차와 패션, 건물 등 예스런 볼거리로 눈을 충족시키고, 유려한 음악들로 귀를 매료시키며 70년대 프랑스 형사물을 보는 듯한 기시감을 불러낸다. 작전 중 만나게 된 소련 여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거는 낭만적 첩보원 리키(톰 하디), 속을 알 수 없는 서커스의 수뇌부 빌(콜린 퍼스) 등 다양한 인물들의 다채로운 개성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첩보원 출신으로 첩보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영국 작가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에 색과 소리를 입혔다. 70년대 동명 TV 시리즈로도 인기를 모았는데, 명배우 알렉 기네스(1914~2000)가 조지를 연기했다. 르 카레는 조지 역을 누가 맡을지 가장 우려했다고 하는데, 올드만의 연기는 그런 걱정을 싹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최우수남우주연상 후보에 처음 올랐다.
스웨덴 영화 '렛미인'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토마스 알프레드슨이 연출했다. '렛미인'에 이어 그는 감수성에 젖은 스릴러를 다시 빚어낸다. 제목은 영화 속 이중간첩 혐의자들의 별칭에서 비롯됐다. 최우수음악상 등 아카데미상 3개 부문 후보작이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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