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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산, 바람, 물, 그리고 조선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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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산, 바람, 물, 그리고 조선집 이야기

입력
2012.02.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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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집은 터를 닦고, 기단을 올리고 기둥을 세우고 보를 엮은 다음 서까래를 올리고 지붕을 얹는다. 목구조의 세세한 표현이 스며있는 조선집의 짜임을 보면 집 자체로도 감동이다. 지붕을 보더라도 위에서 아래로 완만하게 내려오는 곡선이 있고, 동시에 수평으로도 처마 끝에서 처마 끝으로 휘어진 곡선은 육중한 지붕의 무게를 가볍게 털어버리듯이 파란 하늘을 가르고 떠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보아지와 주두와 익공을 타고 기둥으로 흐르는 중력을, 자연스러운 주초가 마지막으로 땅에 전달한다. 집이 견뎌야 할 하중을 정확히 나누고 펼친 결과 조선집은 마치 원래 거기 있었던 나무나 바위처럼 자연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거기에 시간이 개입하면 할수록 지붕의 기와는 이끼가 피고, 나무는 사람들의 손질로 풍경 자체가 되어간다.

풍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 그대로인 집이 조선집이다. 거기다 창호의 종류도 다양하다. 안밖으로 창호지를 붙인 맹장지문, 거기에 팔각형으로 한쪽 살을 보인 불발기문, 그리고 살의 문양에 따라 완자문, 띠살문 등 그 종류를 다 알기도 힘들 정도다. 대목의 솜씨나 소목의 솜씨를 따라 감상하자고치면 시간이 원망스러운 게 조선집이다.

그러나 조선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집의 꼴과 짜임새가 아니다. 서양건축에서는 이런 집의 짜임새가 대단히 중요하다. 기둥의 머리에 따라, 그리고 평면의 짜임, 입면의 꼴에 따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의 시대별 양식사가 정해진다. 서양건축에서 집은 인식의 대상이다. 따라서 그 대상에 나의 인식의 방법들이 스미게 된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건축이나 일본건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조선집은 집을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대자연속에서 변화하는 풍경의 하나로 여겼다. 그래서 다포, 주심포, 초익공, 이익공, 배흘림, 하는 것들은 필요에 따라 통시대적으로 다양하게 변주된 것이지, 서양건축처럼 결코 그것으로 시대별 양식사를 구분 할 수 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물론 구조의 변화를 추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양식사를 구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조선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식의 대상은 무엇인가. 바로 자리다. 그 집이 어디에 자리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집의 제일 원리다. 조선집의 제일 원리가 집의 자리를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이니 만큼, 우리는 집이 앉을 자리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사실 집을 짓고자 할 때 제일 처음 하는 것이 땅을 찾는 일이고 보면, 이 고민은 동서고금이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서구가 도시라는 인위적인 바탕에서 자리를 정한다면 우리는 철저하게 자연의 조건에서 찾았다. 거기서부터 발달한 것이 풍수다. 풍수는 한 마디로 바람을 조절하고, 물을 얻는 방법이다. 평지가 많은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 풍수는 바람을 막고, 물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말한다.

중국의 정원에 일부러 쌓은 산이 많고, 멀리서 끌어 온 운하가 발달한 것이 그 예다. 중국의 풍수는 사람의 힘이 많이 들어가지만, 우리의 풍수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찾는다. 거기에 약간씩 사람의 힘을 보탤 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한반도의 자연에 무지한 사람들은 우리의 정원이나 건축을 이해하기 곤란하다. 뒷산인지, 정원인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풍수는 주로 음택풍수에서 비롯된다. 명당에 조상의 무덤을 쓰면 그 음덕으로 후손들이 잘 된다는 식의 음택풍수는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미혹하는 술법풍수로 타락하여 풍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었다. 한반도에서 풍수는 좀 정확히 표현하면 풍류고, 수류고, 산류다. 바람의 길과, 물의 길과, 산의 길을 아는 것이 풍수다.

그러니 산지가 많은 한반도에서는 풍수가 아니라 산수풍이라고 해야 맞다. 바람은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로 불어오고, 산은 물의 흐름대로 맥을 이어가고, 그 물길에는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이것이 한반도의 지형이고, 지리다. 거기에 조선의 집이 앉아있다. 조선집의 멋짐은 물론 집에도 있지만, 이런 산수풍의 이야기 속에 있다.

거기에 용의 이야기와 호랑이의 이야기, 쥐의 이야기와 선녀의 이야기, 꽃의 이야기를 짜 넣은 것이 풍수의 형국론이다. 용호출도형이니, 옥녀탄금형이니, 연화수반형이니, 하는 것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사실 이 형상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호랑이 같이 보이는 산은 누구는 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다는 것은 눈이 보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마음은 눈만 가지고는 볼 수 없는 대상들을 본다'는 게슈탈트 심리학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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