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3)씨는 대학 1학년 말이던 2010년 겨울 덜컥 임신을 했다. 뱃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며 동거하던 남자친구도 흔쾌히 출산에 동의했다. 양가 부모에겐 알리지 않았다. 둘이 아르바이트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배가 불러오자 심한 입덧에 우울증까지 찾아왔고 교수와 학생들은 수군대며 피했다.
임신 5개월째 돌변한 남자친구가 낙태를 강요했다. 돈이 문제였다.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남자친구는 "유산될 때까지 맞아보라"고 때리기까지 했다. 너무 속상해 남자친구 엄마에게 연락했지만 "여자가 몸 간수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 아들 애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악담만 들었다. 그렇게 아기 아빠는 떠났고, 휴학을 했다. *관련기사 3면
지난해 예쁜 딸을 낳았지만 복학은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등록금 부담이 없는데도 생활은 늘 곤궁하다. 매일 9시간씩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모가 월 10만원씩 보태주지만 매달 10만원 가까이 적자다. 월세가 밀려 이달엔 방을 빼야 하는 처지다. 그는 "어떻게든 졸업을 하고 싶지만 갈수록 허황된 꿈인 것 같아 죽고만 싶다"고 했다.
미혼모 B(24)씨는 3년 전 애를 낳고 대학에 복학했다. 아침엔 수업을 듣고, 오후엔 아기를 돌보다, 애가 잠든 심야에 6시간씩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 매달 69만원 정도를 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돈은 모자라고, 학점은 엉망이다. 아기와의 관계는 틀어지고, 쪽잠 잘 시간마저 부족하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B씨는 "10대 미혼모였다면 주저 없이 입양을 결심했을 텐데, 맘만 먹으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는 대학생이라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다"며 "아기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너무 미안하기도 하다"고 울먹였다.
세상은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초인(超人)에 비유해 '슈퍼맘'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일과 육아에 학업까지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며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 하는 대학생 미혼모 '싱글마던트'(Single Modent)는 애써 외면한다.
슈퍼맘은 남편이나 가족처럼 든든한 울타리라도 있지만, 싱글마던트는 사회통념을 깼다는 이유로 모두(남자→가족→친구→지역사회→학교→직장)에게 버림받고 사지로 내몰린다. 극심한 생활고와 정신적 스트레스, 취업의 어려움도 모자라 아이 탓에 학업을 마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까지 짓누른다.
사회적 지원도 이들은 비껴간다. '사고'(역시 편견이 깃든)라는 관점에서 시설 및 학업기회 제공 등으로 보호받는 10대 미혼모와, 최소한 학업이라는 짐만큼은 벗어 던진 직장인 미혼모 사이에 위태롭게 끼어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전국의 미혼모는 54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아이를 직접 키우는 미혼모는 14만2,000명(2005년 통계청)이다. 전체 미혼모의 30% 가량인 20대 초반 중 약 10%(1만5,000~2만명)를 싱글마던트로 추정할 뿐이다.
이들에겐 학업 중단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일 육아 학업이 모두 엉망이 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목경화 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숙식을 제공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어떻게든 버티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며 "더러는 노숙을 하다가 애써 낳고 기른 아기를 버리거나 자살을 고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싱글마던트 C(23)씨는 대학졸업장이 취직에 도움이 될 것 같고, 무엇보다 갓 돌 지난 아들에게 떳떳하고 싶어 악착같이 아르바이트하고 공부해 장학금도 탔다. "한학기만 더 다니면 되는데, 평택에서 미혼모가 계속 취업이 안 된다고 7개월짜리 아들을 죽인 사건을 접하고선 섬뜩해요. 설마 어디든 취직은 되겠죠." 그는 "세상이 뭐라 하든 아이를 지우거나 입양 보내지 않고 키운 건 책임 있는 행동 아니냐"고 반문했다.
●싱글마던트(Single Modent)
'마던트'는 엄마(mother)와 학생(student)의 합성어로, 자기계발을 위해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엄마를 일컫는 말. 싱글마던트는 주로 대학(원)에서 육아와 학업,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는 20대 미혼모를 지칭한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노경진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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