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개월 아들 둔 22세 싱글마던트 김아영씨
새해 첫날 수중엔 11만원이 있었다. 우유, 물 티슈, 기저귀 등 아기용품 비용과 교통비만 썼는데도 보름이 지나자 달랑 300원이 남았고, 지체장애3급인 친정엄마에게 1만5,000원을 손 벌려야 했다. 최근 한달 간 그가 누린 호사라곤 8,000원짜리 로션이 전부다. 그래도 이제 막 말이 붙은 아들이 "엄마"라고 불러주면 행복해서 눈물이 절로 난다.
그의 하루는 전쟁이다. 시간 단위로 쪼개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기를 돌보고, 집안 일을 한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들이 잠든 뒤 1시간이 유일한 자유시간이지만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학금을 타지 못하면 위태로운 평안을 아무도 지켜주지 않으리라는 불안이 그를 옥죄기 때문이다.
부산에 사는 김아영(가명ㆍ22)씨는 27개월짜리 아들을 둔 싱글마던트다. 2009년 전문대 입학을 4개월 앞두고 아기를 낳았고, 학업을 접은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학교를 다녔다. "행여 제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함부로 죽일 순 없었어요. 종교(천주교)도 있고, 아이 아빠도 동의했고요."
출산에 우호적이던 남자친구는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태도를 싹 바꿨고, 급기야 출산 직전 "아기를 입양 보내라"는 통보를 하고 사라졌다. 김씨는 "출산 뒤 한두 번 연락했지만 병원에 오지 않았다. 군대를 간 것 같다"고 했다.
아기를 키우며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출산 무렵에도 장애가 있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등록금으로 모아둔 아버지의 유산은 친척이 들고 튀었다. 등록금은 간신히 대출로 때우고, 몸을 추스르자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깃집 문방구 뷔페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지금도 허리가 아프다.
그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 와중에도 성적장학금을 탔다. 공부만이 팍팍한 삶을 벗어나게 해주리라는 믿음으로 아이가 잠든 새벽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아이를 키우며 학업을 마칠 수 있을 때까지 사회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것이다. "학업을 포기하는 미혼모가 많은데, 정부나 기업이 나서서 학비를 조금이라도 보조해줬으면 좋겠어요."
육아와 학업, 일로 녹초가 된 몸은 그래도 버텨주었지만, 세상의 따가운 시선은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누구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살았건만 사람들은 그를 보고 무책임과 부도덕의 극치, 심지어 '말세의 징후'라고 떠든다.
그는 딱 한번 양육을 포기하고 싶었노라고 했다. 아기를 업고 외출한 어느 날, 애가 심하게 칭얼대자 한 할머니가 소리쳤다. "애가 애를 키우니까 저 모양이지. 말세야, 말세!" 우는 아이를 달래다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어린 엄마'라는 낙인이 훗날 아이까지 괴롭힐 것 같아서, 혹시 아이가 알아듣지 않을까 걱정돼서.
세상의 편견은 거의 일상이다. 김씨 모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소곤거리는 축은 그나마 양반이다.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사정을 알만한 미혼모관련 담당 공무원조차 차갑고 불친절하다"고 했다.
다른 싱글마턴트의 처지도 비슷했다. 이들 역시 삼중고에 시달리는 것도 힘들지만, 자신들을 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 견디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낙태를 하면 생명을 죽였다고, 입양을 보내면 버렸다고 욕하면서 정작 낳아 기르는 미혼모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건 가혹합니다."
그래도 김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올해 졸업하는 그는 아동복지를 전공한 덕에 다음달 아들을 맡길 어린이집에 인턴으로 취직한다. 최근엔 모자보호시설에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지난달 말 처음으로 수급비(32만원)도 받았다.
무엇보다 김씨는 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 게 기쁘다. "'엄마' 소리에 모든 번민이 사라져요. 세상 전부가 저를 욕해도 아들은 제 편이 되겠죠. 제대로 된 태교도 못해주고, 아빠도 없고, 부유하게 키우지도 못하겠지만 제 얘기를 들어주고 답도 해주겠죠. 다른 건 안 바래요. 버리지 않았으니 고맙다가 아니라 그저 이해한다고만 해주면…." 앳된 엄마는 애처럼 선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노경진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3년)
■ 생활비에 학비까지 살 길 막막한데
"입양가정은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매달 10만원씩 받을 수 있지만, 정작 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는 월 5만원만 지원돼요. 그것도 미혼모의 부모 소득까지 따지죠."
전문가들은 사회적 약자인 미혼모 중에서도 싱글마던트가 가장 취약하다고 말한다. 시설 등의 보호를 받는 10대 미혼모와 생활력이 있는 직장인 미혼모와 달리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데다, 수많은 제약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싱글마던트는 먼저 가족과 단절된다. 대부분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도, 부모가 경제력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주거ㆍ의료ㆍ생활 지원이 차단되는 것이다.
설사 지원대상이 되더라도 딜레마에 빠진다. 생활비에다 등록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탓에 무리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소득이 지원 범위(월 118만원)를 넘어서 지원은커녕 5만원조차 받을 수 없다. 등록금을 해결하면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는 악순환에 빠지는 셈이다. 미혼모 생활시설인 애란원 강영실 사무국장은 "학비든, 생활비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거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가족과 멀어지면 살 곳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시설에선 해당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해 일과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싱글마던트가 시설 입소를 꺼리는 이유다. 관련단체 전문가는 "현재의 시설은 구태의연한 격리와 수용, 교화 같은 과정이 되풀이돼 마치 교도소 같다"며 "미혼모 각자의 처지와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서비스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싱글마던트는 임대주택 입주 자격도 한부모 가족에게 밀린다. 부양가족 수, 해당지역 연속 거주기간, 자활사업 참여기간, 청약저축 납입횟수 등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지원금 5만원을 소득과 관계없이 월 1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며 "학교는 휴학 횟수나 졸업 이수학점 등을 융통성 있게 짜주고, 정부는 기업과의 연계 등을 통해 등록금 일부를 보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주 대한사회복지회 사회복지사는 "싱글마던트 카드를 발급해 매달 얼마씩 생활비나 등록금 대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고찬유기자·노경진 인턴기자
■ 오바마는 국정연설에 싱글마던트 초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열린 신년 국정연설에 특별한 손님들을 초대했다. 부자증세의 당위성을 상징하는 워런 버핏의 비서,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가브리엘 기퍼즈 전 의원 등 쟁쟁한 인물들 틈엔 재키 브레이라는 여성이 끼어있었다. 그는 기업의 지원으로 대학을 무사히 마친 미혼모다.
오바마 대통령이 짤막하게 소개한 재키 브레이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포장업체의 정비사로 일하다 해고를 당한 뒤 아이를 키우기도 벅찼을 텐데 다시 대학에 들어갔다. 세계적인 IT기업 지멘스가 대학과 제휴를 맺어 그의 학비를 지원했고, 졸업 후 채용까지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혼모의 학비 지원을 위한) 비슷한 프로그램을 나라 전역에 만들고,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호주는 미혼모들에게 세제혜택, 주거비 지원, 양육비 지급, 아동양육수당 지급, 육아휴직급여 등 출산과 양육을 위한 각종 혜택을 지원한다. 대만, 태국, 칠레, 브라질은 미혼모가 마음 놓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혼모 정책이랄 것도 없지만 그나마도 유독 상대적으로 아기를 키울 의지가 적은 10대 미혼모에 집중돼있다. 정작 학업을 통해 미래를 꿈꾸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마던트의 숫자(1만5,000~2만명으로 추산)는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관련단체 전문가는 "싱글마던트 숫자가 외국보다 적어 보이는 건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스스로 접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제까지 그들은 소리소문 없이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고찬유기자·노경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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