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유물만 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은 아니다. 조명 만화 악기 등잔 전화기 돌 등 인간과 함께 호흡한 다양한 물건들이 이미 박물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우리와 가장 가까우면서 먹거리로 천대 받았던 가축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1월 경기 이천시에 개관한 돼지박물관과 지난달 말 동두천시에 문을 연 닭박물관이 대표적이다.
닭에서 문화를 찾다
지난달 31일 동두천시 하봉암동 ㈜마니커 동두천공장 옆 단층 건물에 들어서자 키가 1m가 넘는 나무 닭이 반겼다. 벽에는 계관도 등 닭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줄줄이 걸렸고, 전시대 위는 형형색색의 닭 공예품들이 차지했다. 작품 중에는 우리나라 것도 있지만 미국 일본 포르투갈 독일 등에서 온 해외 닭들도 다수였다. 재료도 청동 나무 도자기 등으로 다양했다.
면적이 약 540㎡인 박물관 안은 3,600여 점의 각종 닭 작품들로 가득 차 그야말로 '닭 세상'이었다. 관람객 편의를 위한 카페에서도 커피와 함께 치킨 너겟, 닭강정 등을 팔았다.
동두천 닭박물관의 전신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닭문화관이다. 김초강(72) 전 이화여대 교수가 2006년부터 애장품을 전시했지만 운영난을 겪다 2009년 ㈜마니커에 인수됐다.
주인은 바뀌었어도 음식이 아닌 문화로서 닭을 이해하려는 철학은 여전하다.
개관 특별전으로 마련한 '꼭두닭' 전시는 망자의 영혼을 안내하는 영특한 동반자였던 닭을 조명한다. 꼭두닭은 상여 위에 놓이는 나무조각상으로 우리만의 고유문화다. 조선시대에는 장원급제 한 사람에게 닭 그림을 선물할 정도로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방영석(67) 닭박물관장은 "닭은 혼례상에 오르고 예술작품 소재였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처럼 국조가 되기도 했다"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먹거리로만 치부된 닭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닭박물관은 다른 박물관이나 체험 프로그램 등과 연계해 닭을 경기북부 문화아이콘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동두천시민, 닭띠 군인, 장애인 등은 입장료(2,000~4,000원)의 50%를 감면해 준다.
돼지 선입견을 깨다
미련하고 지저분한 동물 1순위인 돼지. 잡식성에다 더러운 사육환경은 편견에 더욱 불을 지핀다. 돼지인공수정회사를 운영하는 이종영(46)씨는 이런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고 싶었다. 세계 18개국을 돌며 돼지 관련 작품을 수집한 지 17년. 자신이 꾸렸던 돼지농장 자리에 드디어 국내 최초의 돼지박물관을 세웠다.
2일 찾은 돼지박물관은 300㎡ 규모의 아담한 단층 건물이었다. 전시실에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그림과 공예품 등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 맞은 편은 수장고로, 공간이 부족해 미처 전시하지 못한 조각 그림 인형 잡지 등 돼지 관련 수집품 4,000여 점이 소개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돼지에 대한 이씨의 애착은 대단하다. 과거 양돈산업 1번지였던 이천에 박물관을 지은 것도 이천을 돼지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그는 "돼지가 대소변을 가릴 줄 알고, 뛰는 속도도 시속 45㎞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대부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중국에서는 행복전령사로 통하고, 일본에서도 신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먹거리에 불과하다"며 "수명은 15년인데 경제성 때문에 6개월 만에 도살되는 돼지를 추모하고 문화적 의미를 올바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박물관 옆에는 '돼지보러 오면 돼지'라는 체험 농장이 함께 운영된다. 돼지를 직접 만져보거나 소시지 만들기 등이 가능하다.
지난달 돼지박물관과 체험농장에는 가족단위로 약 700명이 다녀갔다. 예상보다는 반응이 빠른 편이지만 아직 수익이 나는 단계는 아니다. 입장료는 1,000~2,000원.
이씨는 "일회성이 아니라 여러 번 찾아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며 "이 일대를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주민과 공존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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